세상사는 이야기

아기들 책, 교구 너무 비싸다

그루터기 나무 2006. 12. 8. 15:40

 

 

대전의 처형이 준 아기 책, 그러나 시중의 교구 및 교재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윤태

 

 

 

"나 사고 쳤어. 당신 돈 더 많이 벌어와야 해."
"무슨 일인데? 도대체 뭐야?"

쓰러질 듯 피곤한 몸을 끌고 퇴근한 제게 아내는 실실 웃는 얼굴로 사고를 쳤으니 돈을 더 벌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설마 둘째라도 가졌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사고 쳤다'는 표현은 뭔가 맞지 않는 듯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돈을 더 벌어오라는 거야?"
"나, 아기 책 샀어. 동화책이랑 CD랑 등등해서….
"얼만 어치 샀는데 그래?"
"100만 원 넘어. 그냥 일부만 산건데....12개월 할부로 긁었어"
"뭐, 100만 원? 100만 원이라고? 10만 원 아니고 100만 원 이라고?"

저는 세수를 하는 동안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놀라서 수도꼭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얼마나 샀기에 100만 원이 넘는단 말인가? 게다가 지난번에 대전 처형네에서 가져온 교구가 상당히 많은데 무슨 교구를 100만 원이나 주고 샀다는 말인가? 저는 아내의 행동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를 놀려주려고 그냥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내로 말할 것 같으면 수수료 몇 백 원 아끼려고 멀리 떨어진 해당 은행으로 일보러 가고 마을버스비 아끼려고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등 투철한(?) 절약상으로 텔레비전 방송에 다섯 번이나 출연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가 이제 갓 100일된 아기를 위해 100만 원어치의 교구를 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리분별이 확실한 아내이기에 저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그 회사에서 나오는 교구가 유명한데 많은 엄마들이 아기의 지능과 행동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그 회사(영업점)에 나가 종이접기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러 엄마들과 사귀면서 자칫 산후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엄마들의 기분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11월부터 출근하면서 육아에 대한 아내의 어려움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놓기만 하면 울고 보채는 아기 때문에 밥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기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면 낮에도 컴컴해 우울해지기 쉬운 집안에서 종일 아기와 씨름해야 하는 아내로서는 그 교구영업점을 하나의 탈출구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 영업직원이 교구의 장점을 입술이 부르트게 아내에게 몇 시간 동안 설명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비싼 교구 가격이었습니다. 글 쓰는 일에 종사하는 제 월급 해야 늘 그렇듯이 100만 원인데 100일된 아기 교구 값이 100만원이라니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해도, 과연 그만큼의 가치를 할까 의아했습니다.

무엇보다 아기 연령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양의 교구를 구입해 자치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한테 뭔가를 열심히 보여주고 교육을 시킨다는 게 실효성이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이 일로 저는 아내와 다툼을 했습니다. 결국 카드결제를 취소했고 하루 동안 아내와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해서 다음날 해당 교구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품정보를 보고 이 회사 제품에 대한 많은 의견들을 읽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그 회사 물건이 좋긴 한데 터무니없이 비싸고 교구를 구입한 다음 영업점에 나와 종이접기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차 비용을 갚으라는 등 직원들의 집요한 상술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그 교구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했습니다. 아기가 좀 더 크면 그에 맞는 교재를 적당히 구입해 가르쳐주고 지금 시점에서는 많이 안아주고 얼굴 보며 웃어주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저는 아내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비싸더라도 사는 사람은 다 사고 잘 활용한다고 말을 하며 제 말에 반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예 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 교구에 대해 자꾸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며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내 말이 맞습니다. 비싸더라도 살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여유가 되는 사람은 그보다 더 비싸더라도 구입해 쓰면 됩니다. 그러나 저희 집 같이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는 무리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말 그대로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조건 아내를 탓하는 건 아닙니다. 교구 값만 그리 비싸지 않았더라면, 아니 10~20만 원 정도 했다면 구입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나가 다른 엄마들도 사귀고 하면서 집안에서 아기 때문에 올 수 있을 산후 우울증을 최대한 예방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터무니없는 비용이 아니더라도 아기와 함께 짜증과 우울이 아닌 즐거운 육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