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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서 주민등록증 보고 서류에 한자 이름 쓰며 배운 만학도

그루터기 나무 2006. 12. 26. 23:38

 

자신의 한자 이름을 몰라 화장실에서 주민등록증을 보며 서류를 기입했던 만학도 ⓒ윤태

 

 

만학도들이 다니는 양원주부학교와 동일한 재단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올해 마흔 일곱의 노기순씨는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움의 대한 열정을 불살라 주위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식당을 하는 노씨는 1년 전 텔레비전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이 출연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까지 입학한 사연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한걸음에 달려가 이 학교에 입학원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장에 이상이 생겨 입원을 했고 신부전증이 우려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급하게 수술까지 하게 됐다. 그러잖아도 10년 전 자궁암 수술과 4년 전에는 담석 수술을 한 적이 있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한다는 의사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입학식 이틀 전날 노씨는 병원을 박차고 나와 성치 않은 몸으로 기어이 입학을 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담임선생님과 교실을 배정 받고 책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몸이 편치 않았고 오후 2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식당 일이 바빠 제 시간에 등교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과 자녀들도 건강을 이유로 학교 가는 것을 극구 말렸다. 학력이 낮아도 지금까지 잘만 살아왔는데 굳이 이러한 악조건에서 배워야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식구들이 반대를 하면 할수록 배움에 대한 노씨의 갈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솔직히 두려움이 많이 앞섰어요. 몸이 좋지 않아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학교를 다닌다는 게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함께 가슴속엔 늘 기쁨이 있었답니다."

그녀가 말하는 기쁨이란 수업이 끝난 후 종종 동료들과 함께 떡볶이, 순대, 라면 등을 사먹고 수다를 떨며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설렘이 한꺼번에 공존해있던 것이다. 몸은 비록 40대 말이지만 마음만은 열여섯 살 중학생이었던 것.

이젠 남편도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점심시간 바쁘게 손님들을 치르고 나서 뻐근한 몸으로 책가방을 챙기지만 역시 지각이다. 요즘엔 남편이 오토바이로 학교까지 태워준다고 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솔솔한 재미를 느낀다는 노기순 씨. 공부를 시작하기 전 암담했던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전에는 은행이나 관공서 등에 가서 뭐 하나 작성하려면 진땀을 뺐어요. 화장실로 용지를 가지고 가 주민등록증을 꺼내놓고 내 한자 이름을 그대로 그리기도 했고, 영어 같은 경우는 손목이 아파서 그러니 옆에 있는 사람한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한 적도 많아요."

노씨는 이어 "사연을 풀어놓으면 구구절절 할 말이 많아요. 저뿐만 아니라 만학도들은 특별한 사연이 다 있어요. 그러니까 만학도가 됐죠. 중요한 건 늦게라도 의지만 있으면 배울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강한 의지 앞에서는 장애물이 될 수 없어요."라며 강한 학구열을 나타냈다.

 

 

** 이 글은 파이미디어(파이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