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악성인지 양성인지 조직검사 해봐야 나옵니다"

그루터기 나무 2006. 11. 1. 23:40

 

 

 

한솔교육 연수 중이던 지난 목요일 새벽, 시골에 계신 엄마가 맹장이 터지기 직전 수술을 받으셨다.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서산의료원 응급실에 갔다가 안산 고대병원으로 다시 향했지만 병실이 없어 그곳에서 소개해준 가까운 내외과로 입원해 급히 수술을 받으셨다.


늘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다”고 의사가 말했다. 며칠전부터 배와 옆구리가 심하게 아파왔지만 엄마는 꾹꾹 참다가 결국 고통의 한계를 느껴 야심한 새벽, 큰형에게 전화해 안산까지 올라와 수술을 받으신 것이다.


엄마 연세는 만으로 63세, 그러나 의사는 신체나이가 90세 정도라며 놀라와 했다. 소화기 쪽을 비롯해 관절 등 성한 곳이 없고 시골에서 고생을 하시다보니 얼굴과 피부도 90 연세답게 보인다. 게다가 위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매운 것을 전혀 못 드셔서 김치를 담을 때도 맛을 못 보시고 감으로 하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술 도중 발견된 큼직한 혹. 의사는 악성일지 양성일지 모르지만 종양일 가능성이 있다며 큰 병원에 조직검사를 맡겼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단다. 만에 하나 악성종양으로 판정이 나면 이미 여러 장기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의사사 설명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절망에 빠져본 적이 없다. 엄마의 병이 암일 수도 있다니... 아무것도 모르시는 엄마는 그저 간단한 맹장 수술 하신 걸로 알고 게다가 수술이 잘됐다고 하니 아픈 몸을 이끌면서도 걱정하시지 않았다.


우리 6남매가 번갈아가며 안산 병원을 찾았다. 시골에 계실 때도 허약해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은 초췌 최악의 상태였다. 게다가 가스는 차오르고 변도 나오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관장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대장 등 장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자칫하면 장 파열이 올 수도 있다며 쉽게 관장 치료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온 가족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가스와 나오지 않는 변은 당장에 엄마의 상태를 최악으로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며칠 후 나올 종양 조직검사 결과 여부에 안절부절 못했다. 지금 당장도, 앞으로도 걱정과 불안 투성이인 상황. 시시각각 엄마의 상태를 묻는 형제들의 전화가 휴대폰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한솔교육 연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누나는 이러다가 자칫 한 달 만에 돌아가시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 많지 않은 연세에 이런 불행이 닥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러나 천만 다행, 하늘이 도왔는지 입원 3일째 엄마는 변을 봄과 동시에 가스를 뺐다. 그리고 흰죽을 비롯해 조금씩 식사를 하셨다. 걱정인 것은 물이든, 식사든 뭐든지 들어가면 배가 아파온다는 사실이었다. 조직검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암이 전이가 돼 그런 통증이 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불쌍한 우리 엄마.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토요일 아내와 새롬이 온 가족이 병원을 찾았다. 왠지 엄마에게 손자 새롬이를 최대한 많이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토, 일요일 양일간 병원에서 보냈다. 새롬이가 깨어 있을 때마다 링거를 맡고 시름시름 하시는 엄마 얼굴에 녀석 얼굴을 마주대고 “뽀뽀‘를 시켰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손자의 뽀뽀에 마냥 즐거워하셨다. 제발 앞으로도 손자의 얼굴을 계속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루하루가 일년 같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지 받아들여야 한다며 큰누나, 작은누나는 담담해했다. 그런데 나는 왜 담담하지 못했을까. 시골에서 그렇게 고생하셔서 몸의 상태가 최악이라는 사실은 형제들 모두 알고 있고 그 때문에 더 큰 병이 올 수 있다는 사실,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기는 싫었다.


11월 1일, 수요일, 한솔교육 분당지점으로 첫 출근하고 퇴근해 저녁때 작은누나로부터 조직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종양은 아니었다. 맹장 등 장기의 염증이 너무 심해 뭔가가 부풀어 올랐고 그것을 종양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천만다행이었다. 결과를 방금 전해 듣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마음이 안정이 됐다. 설마 실제 악성 종양인데 오진을 해 괜찮다고 한 것은 아니겠지?


엄마의 상태는 양호해지고 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워낙 심한 염증으로 언제라도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하는 입원, 퇴원 후에는 정말로 몸 관리 잘 하셔야 하며 심한 일을 하셔도 안 된다. 하지만 시골로 가시면 여느 때처럼 들과 논에서 살아갈 분이다. 편히 쉬어도 시원찮을 판에 일을 하셔야만 하는 엄마. 슬슬 아버지 식사나 챙겨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농촌 현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여하튼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늘 주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남긴 채 한시름 놓게 됐다. 쭈그렁 할머니 우리엄마. 그런 허름한 모습, 엄마의 존재가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