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여성 경호원은 누굴까?
우리나라 최초 여성 경호원 고은옥 씨 ⓒ 윤태
성추행, 성폭행, 납치, 스토커 등 흉흉한 사건이 자주 터지면서 우리 사회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과거 특정인에게 국한돼 있던 위험요소가 지금은 불특정 다수에게 옮겨져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가 흉흉할수록 뜨는 업계가 있다. 바로 경호업체이다. 2005년 노동부는 향후 5년 내 최고성장 직업 상위 20위에 경호원을 포함해 발표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4년 말 기준 등록된 경호업체는 2699개이고 연간 시장 규모는 3조원이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경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도산하거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등 실제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민간 경호업체는 극소수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경호 관련학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방대 중심으로 약 70개 관련학과가 개설돼 있으며 신종 직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신학문이고 개척분야다 보니 교수도 부족해 경호원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원활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전문 교육 시스템이 체계화되고 경호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 경호원이 향후 유망직종이 될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어려운 경호업계 현실에서 일사천리로 나가며 주목을 받고 있는 업체가 있어 찾아갔다.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왔던 경호 시장에서 국내 최초로 지난 2003년 여성 전문경호경비기업을 만든 '퍼스트레이디'의 고은옥 대표(29)를 마포구 도화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96년 처음 경호일을 시작해 사설탐정 업무를 하며 99년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대통령 방한, 2002년 미국의 유명 배우 톰 크루즈 방안 때 경호를 수행한 바 있다. 또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때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미국 스칼라피노 교수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많은 고위관계자들의 경호를 맡기도 했다.
연간 1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퍼스트레이디 측은 올 안에 일본에 지사 형식의 합작회사를 만들어 해외에 진출할 계획으로 현재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미 일본 텔레비전 방송에서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던 퍼스트레이디는 국제적으로 그 무대를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고 대표는 지난 2004년부터 포항1대학 경호스포츠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다음은 고은옥 대표와의 일문일답
- 경호 일을 하게 된 동기는?
"특별한 동기는 없다. 어려서부터 태권도 등 운동하는 걸 좋아했고 경찰, 군인 같은 직업을 꿈꿔왔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딸만 셋인 우리 가정을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 역할을 하기로 하고 직업을 경호원으로 굳혔다."
- 경호원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무엇인가.
"경호관련 학과의 학위를 취득해야 하고 경비지도사 등의 자격증이 필요하다. 사설 경호의 경우 아직까지 국가공인 자격증은 없는 상태다. 그밖에 유도, 태권도 등 단증을 갖춰 신체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경호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인터넷 등 자료에도 많이 나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경호원의 첫째 조건은 올바른 지성이라고 본다. 경호 업무는 차차 배우면 되지만 처음부터 비뚤어진 인격을 가진 사람이 경호를 하면 일이 틀어지는 수가 있다. 특히 일의 특성상 현장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 경호를 하는 경호원 임의대로 매출을 빼돌려 애를 먹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할 때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지성과 인격을 갖췄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 경호원들에 대한 복지는 어떤가.
"4대 보험은 기본이고 급여수준도 꽤 높다. 개인경호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월 210만원에서 경 수준에 따라 3, 4백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경호원은 희소성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다만 경호업무가 단순히 몸으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비서와 참모 역할을 수행하는 등 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컴퓨터, 외국어 능력은 물론 고급외제차량 운전까지 기본적으로 갖춰야 것들이 많다. 일이 쉽지 않은 만큼 대우는 좋다고 볼 수 있다."
- 경호하면 주로 남성을 떠올리는데, 여성경호원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우리 회사에서는 여성경제인(CEO)들을 많이 수행하는데 남성경호원들과는 달리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에는 납치, 성폭행 등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범죄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의 안전을 수행할 때는 단순한 경호가 아닌 언니, 누나의 입장에서 의뢰인을 대할 수 있다. 종종 자폐아 아이들을 맡을 때도 있는데, 이때는 경호와 함께 그 아이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상담자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정신적 치유까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런 경우는 딱딱하고 무서워 보이는 남성경호원보다 여성경호원이 제격이다."
- 반면 애로사항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아무래도 여성이다 보니 체력적 한계가 있다. 특히 며칠 동안 의뢰인과 함께 지방을 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다보면 지치는 경우가 있다. 이와 함께 '여자가 무슨 경호를 하냐?'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문제다. 남성경호원과 똑같은 훈련받고 자격증 갖추고 그들에 뒤지지 않는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볼 때는 속상하다."
- 여성 경호의 가장 큰 매력이 있다면?
"한마디로 자부심이다. 남성 전유물로 생각됐던 분야에 여성이 뛰어 들어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내 자신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존재의식도 함께 느끼게 된다. 이와 함께 CEO들의 경영마인드 등을 꼼꼼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어 회사를 운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 운동 말고 다른 취미 없나?
"업무와 취미를 포함해 내 일상은 운동이 전부다. 다만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고 냉철해야 하는 경호업무라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 요즘에는 소설, 인문 등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소설 속의 인물 심리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취미 얘기하다가 또 다시 업무로 돌아온 걸 보니 역시 나는 일이 체질인가보다. 솔직히 취미를 위한 시간도 없다. 아예 사생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다가도 뛰어나가기 일쑤고 주말이면 의뢰인의 행사, 모임 등이 많아 더 바쁘다. 퇴근시간이 주로 새벽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써 다이어트할 필요가 없다."
- 처음에는 사설 탐정업무를 했는데, 어려움 없었나?
"보험사기, 교통사고 조사, 산업스파이, 사이버범죄 등에 대해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경호원은 수사권, 체포권 등이 없어 애를 먹는다. 일을 진행하기 위해 변호사의 위임을 받아 추적 미행하고 지문까지 채취하는데 민간인 신분으로 경찰, 검찰이 하는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영역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탐정법이 입법화돼야 경호업계도 활기를 띨 수 있을 것 같다. 일부에서 탐정법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또한 법이 생기더라도 철저히 경호 업무에 이용돼야 하는데, 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경호원이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경호원은 임무수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타인에게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 이라크 전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도 전 경호원이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줘 결국 체포됐다. 물론 전범을 잡아야 함은 마땅한 일이지만 경호 측면에서 볼 때 전 경호원들이 경호원칙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 경호원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 측면에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부 의뢰인 중에는 경호원을 일당 개념의 하인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경호원은 의뢰인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외국의 경우 경호원에 대한 대접이 극진한데 비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또한 굳이 위해요소가 없는데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동창회, 결혼식, 장례식장 등 행사에 경호원을 대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경호업체 측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편 개인 경호 수요가 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 경호를 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
"이영남 전 여성벤처협회 회장과 미국의 김태연 TYK그룹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여성벤처업계에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킨 분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이다. 또한 김태연 회장은 태권도 8단 소유자로 지난 68년인 22세 때 여성의 몸으로 미국에 건너가 서부 최대의 태권도장을 설립하고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등 미국 1백대 우량기업에 선정되기도 한 분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두 분을 경호하고 싶다."
자격증, 각종 인 허가증을 설명하고 있는 고은옥 대표 ⓒ 윤태
그동안의 업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윤태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여성 경호원을 꿈꾸는 분들께 혹여 정보 제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