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에서 시 쓰며 사는 시인 부부
박소담, 이지선 시인 부부의 모습이 정답다. ⓒ윤태
박소담(63), 이지선(56)씨 부부는 경기도 시흥에서 아담한 농장을 가꾸며 살아가는 소박한 자연인이다. 또한, 자연을 주로 소재삼아 시를 쓰는 부부시인이기도하다.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그다지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지 외형적인 것만 보고 아름답다, 아니다를 판단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것"이라며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부부는 말한다.
부부는 사과나무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이를 주제로 각각 한 편의 시를 쓸 예정이다. 하루빨리 사과가 익기를 바라면서 아름다운 부부시인이 살고 있는 송암농장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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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안 숙소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포도나무가 철조망 위로 얹혀 있어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듯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포도만 있는 과수원으로 알고 갔는데 사과, 배, 복숭아, 자두, 살구 등 여러 종류의 과수가 산발적으로 서 있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소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등을 비롯해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농장을 빼곡히 메우고 그 아래에는 봉선화, 분꽃, 박하 등 수십 종의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농장을 잘못 찾은 줄 알았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계속 안으로 들어가는데 박소담 이지선 부부 시인이 반갑게 맞았다. 나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 포도농장 아닌가요?"
"포도 농장 맞아요. 어서 오세요."
"그런데 웬 나무하고 꽃들이 많아요?"
"하하하, 여긴 자연학습장입니다."
이번에는 소담 선생이 포도농장에서 자연학습장이라고 말을 바꿨다. 어리둥절해 있는 기자에게 소담 선생은 손가락으로 농장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손끝에 무궁화 꽃이 걸렸다.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의 꽃을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심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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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시인은 수익을 목적으로 이 농장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 농장에서 생산한 포도와 머루로 술을 만들어 팔긴 하지만 큰 돈은 되지 않는다. 술을 빚기 전에 따먹는 포도가 더 많을 정도이다. 부부는 견학 오는 학생들이나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포도를 따준다. 차를 갖고 와서 몇 상자씩 포도를 따가는 일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어디 이뿐인가. 소담 선생은 농장 곳곳에 원두막을 지어놓았다. 휴가나 피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뿐만 아니라 밥그릇, 숟가락, 버너까지 빌려준다. 쌀 김치만 가지고 피서나 휴가를 와도 좋다고 부부시인은 말한다. 물론 사용료는 일체 없다. 밥이 지겨우면 과일을 따먹으면 된다.
"선생님, 힘들게 과수 농사지어서 너무 많이 봉사하시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뭐 인생이 특별한 거 있나요.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 자연이 좋아 찾아오는 분들을 만나는 게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봉사라는 거창한 말은 당치도 않아요. 그냥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일종의 삶의 방식입니다. 욕심을 비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지요."
부부 시인은 세상사에 물욕이 없음을 언급하며 애써 봉사라는 말을 피했다.
"농장의 풍경도 아름답고 과수를 가꾸시는 두 분의 모습은 더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두 분 선생님의 마음이 가장 아름답군요."
"허허, 과수 가꾸는 일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허허."
그렇다. 농장을 가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땀이 나고 등이 휘는 노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도 이들에게는 행복이다. 자연과 함께 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고통이라고 표현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역시 부부 시인답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을 하다보면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손닿는 곳의 과일을 따 옷에 쓱쓱 문질러 먹는다. 그게 점심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소담 선생은 서너 통의 전화를 받았다. 포도를 따러 오겠다는 지인들의 전화였다. 언제든지 들르라는 소담 선생의 넉넉한 인심이 농장에 울려 퍼졌다.
초겨울 농장 나무들의 잎사귀가 다 떨어지면 어쩌면 이들 부부 시인은 그 씁쓸함을 한 줄의 시로 옮길지도 모른다. 텅 빈 과수 나무 사이로 비치는 노을을 바라보며 쓰는 아름다운 부부시인의 고독한 시(詩)는 더욱 더 여물어갈게다.
* 이 기사는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