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모셔야 하는 불쌍한 업체 사람들의 현실
연말이면 생각나는 선물. 가족끼리 주고 받는 다정한 선물만 있을 까요?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말하면 생각나는게 바로 '선물'입니다. 가족간에 정다움을 나누는 선물도 있겠지만 정치, 경제계에서 주고 받는 검은 돈이나 값비싼 선물 등도 떠올리게 됩니다.
과거 이명박 전 서울시장 '황제테니스 파문'과 '김재록 게이트' 사건을 보면서 정경유착 혹은 정·관계 로비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 권력, 경제 권력, 관 권력 등 막강 권력 주변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많은 기업, 권력의 약한 입김도 기업으로서는 토네이도로 불어 닥치는 상황. 그 토네이도를 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수습하는 기업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몇 년 전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주간전문신문(경제지)에 기자로 근무하고 있을 때입니다. 취재를 위해 정부청사에 자주 들어갔습니다. 이때마다 곧잘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책협력팀, 대외협력팀의 과장, 대리 직급의 직원들입니다.
그 당시 제 직업이 기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처절했습니다. 양손엔 뭔가를 무겁게 들고 촘촘히 앉아 있는 사무관, 서기관, 주사 등 공무원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들어오는 그들. 더러는 부장급 이상의 간부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출입처(기업)에서 만나면 이들 간부 또한 만만치 않은 위치인데 청사에만 들어오면 작아집니다.
때로는 업체 측에서 대대적인 점심 자리를 마련해 수십 명이나 되는 청사 공무원들을 여러 봉고차에 나눠 식당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좋은 대학 엘리트 직원이지만 대외업무를 보는 팀의 낮은 직급이다 보니 양손을 무겁게 해 중앙부처 공무원 모시기에 열을 올려야 하는 이들.
그 직원들도 정말 그러기 싫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이고 삼자가 보면 가벼운 뇌물을 줘가며 자사에 유리하도록 공무원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만약 거리의 교통표지판을 철제 재질에서 모두 고무재질이나 플라스틱 재질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도로교통법을 개정한다고 할 때 고무나 플라스틱을 생산, 가공하는 업체 측에서는 이 법이 어떻게 개정되느냐에 따라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중앙부처 해당 과에서는 공청회를 열어 업계의 의견도 듣고 설문조사도 하며 외국의 사례도 찾아보겠지요. 이때 고무나 플라스틱 업체에서 각기 법 개정의 타당성, 논리성을 강조한 엄청난 자료와 '말발'을 가지고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눈물겨운 로비를 합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는 법 개정해 정책 수립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취재를 위해 뭔가를 물으면 법령집부터 꺼내드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입니다. 얼마나 많이 넘겨봤는지 누더기, 넝마가 된 법령집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한참 동안의 로비활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업체 관계자를 향해 '흥' 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의 냉소적인 웃음도 늘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지난 기자 시절 일화를 적어봤습니다. 지금은 공무원 윤리강령이 강화돼 업체 측에서 음료수 등을 사들고 청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인정상 가볍게 사들고 가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요.
제가 경험한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을 언급했습니다만, 각종 권력의 중심가에서 보이지 않는 암 거래는 얼마나 될까요?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자신의 이익과 부를 위해, 기업의 번영을 위해 열심히 관계 맺고 밑에서는 조아리고, 위에서는 입김 불고…구더기 몸속처럼 훤히 비친다면 가히 볼 만할 것입니다.
아, 이러한 암거래가 얼마나 되느냐고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서울 밤하늘의 별이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겠지요. 더럽고 은밀한 공해에 가려 그저 안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