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유골 한 조각 빼 내 가지고 다닌 사연
매달 1일만 되면 회원들과 효 실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신석산 씨. 사진제공 : 신석산 님
특별한 방법으로 효도를 실천하고 또 효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부산 북구 구포1동에 사는 올해 마흔 여덟의 신석산 씨. 신씨의 이색 사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91년 경기도 연천에서 소령으로 대대장 생활을 하던 신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혼자서 자식들을 키워 오신 어머니가 간 경화로 6개월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당시 자폐증을 앓고 있던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신씨는 결국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잘나가던 군 생활도 접었다. 그러나 자식들의 정성어린 간호 탓이었는지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비록 병이 든 어머니였지만 신씨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병시중을 하며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
2001년 여름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고 중환자실을 드나들던 어느 날 신씨는 3년 상을 치러드리겠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요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면 효도가 아니라 불효이고 현실적으로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씨는 꼭 3년 상을 치러 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신씨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자 어머니는 화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6개월 후인 2002년 1월 23일 눈을 감았다. 신씨는 유언대로 화장을 했고 경기도 연천 만불산에 있는 부도탑에 어머님의 유골을 넣기 바로 직전에 유골 한 조각을 뺐다. 부도탑에 안치되는 순간 3년 상을 못치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 신씨는 어머니의 유골을 비닐로 싸서 지금까지 몸에 지니고 다닌다.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슴에 주머니가 달리지 않은 옷은 한번도 입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어머니의 유골 조각을 내려놓고 향불을 피우고는 절을 올린다.
처음에는 식구들의 눈에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차츰 아버지의 지극한 효도 정신을 이해하게 됐고 3년 반이 지난 지금은 아이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효를 배우고 있다고 신씨는 전화 통화에서 밝혔다. 결국 신씨는 `현대판 삼년상`을 치르게 된 셈이다.
신씨의 효도는 개인적인 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해 8월 1일 신씨는 마이크를 들고 부산역 분수대에 나와 `효도를 행동으로 옮기자`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못해 드린 게 한이 돼 부모님이 살아 계신 부산 시민들에게 효도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신씨는 매달 1일만 되면 부산역, 해운대 해수욕장, 부산대학교, 남포동 극장가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벌써 37개월째이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40명의 봉사자도 생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20여만 명의 `효 실천` 서명을 받아 매월 1일을 `효의 날`로 정하자는 취지로 국회에 입법 청원까지 해 놓은 상황이다.
신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언제 입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방울의 물이 언젠가 바위에 구멍을 내듯이 효의 날이 공표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며 "그러나 법 얘기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효를 실천할 수 있도록 효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는 게 우선이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올린 신석산씨와 통화해 전화취재로 작성했으며 인테넷 매체인 '파이미디어'에도 실렸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