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일주일에 학원 10군데 다니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루터기 나무 2006. 11. 25. 17:51
 

학교가 파한 후 들로 산으로 뛰어놀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 윤태


저는 한 교육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론식 독서 논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가정 방문 지도교사이고 7살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2~4명씩 모둠(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학생들을 대여섯명으로 묶은 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에 1회 토론식 독서 논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책을 읽고 문제를 풀며 저와 함께하는 수업 시간에는 상호 토론을 통해 자기생각을 표출하며 이를 글로 표현하는 학습입니다.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전에는 회사에서 교육을 받고 오후 1시쯤, 그러니까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오후 1시 경부터 본격적으로 토론식 독서 논술 수업을 나갑니다. 끝나는 시간은 대략 저녁 9시~10시 사이입니다. 집에 들어오면 10시~11시가 되지요. 그야말로 녹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수업을 나가는 곳은 경기도 성남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입니다. 타워형 아파트도 있는 한마디로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지요.


수업을 하다보면 유치원~초등학생들의 사교육이 엄청남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 그런 것을 느꼈는가 하면, 토론식 독서 논술 수업을 하는 동안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학원 끝나자마자 제가 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또한 제 수업이 끝나면 인근에 있는 학원으로 달려가기 바쁩니다.


다른 학원에서 늦게 끝나면 당연히 제 수업시간도 늦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저는 뒤 타임에 늦게 돼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 수업을 듣는 학생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 수업이 늦어진 만큼 끝나는 시간도 늦어지니 그 학생이 가야 할 타 학원도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교사인 저나 배우는 학생이나 할 것 없이 전쟁입니다.


엊그제는 반쯤 감은 눈으로 수업을 받는 학생에게 몇 군데 학원을 다니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일주일 동안 10개가 넘는 학원을 다닌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태권도, 영어, 수학 등등. 심지어 그 학생은 어떤 학원, 과목인지 전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러 학생들에게도 물어봤지만 학원 5군데는 기본이고 평균 예닐곱군데의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학년, 고학년 할 것 없이 학원수의 편차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해서 학원 적게 보내고, 고학년이라고 해서 많이 보내는 것이 아닌,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많은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토론식 독서 논술 수업을 끝내면 학부모(주로 어머니)와 상담을 합니다. 그날 수업한 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종종 그 아이의 학원 문제도 물어봅니다.


“◯◯이가 많은 학원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나요?”

“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그렇다고 남들 다하는 거 안보낼수도 없고...”


초등학생들의 사교육 열풍, 이미 뉴스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잡은 그 숱한 학원 간판들을 보면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대번에 알 수 있지만 제가 직접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그 열풍을 겪어보니 과연 실감이 납니다. 물론 제가 가르치는 토론식 독서 논술 수업도 당연히 사교육 중의 하나이며 아이들을 지치게 하는 요인중에 한가지 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풀’로 수업이 있는 날엔 정말 피곤합니다. 종종 수업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이 있어서 수업 받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 1시부터 나와서 수업하느라 무척 피곤해요. 그러니까 장난치고 떠들지 말고 우리 수업 열심히 해요.”


그랬더니 아이들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선생님 저희들은 더 피곤해요, 아침 여덟시부터 학교 가서 수업 받고 끝나면 무슨무슨 학원 다니면 정말 피곤해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저는 더 이상 아이들 앞에서 피곤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수업을 하느라 이 아파트 저 아파트로 이동하다 보면 초등학생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공항에 가는 것도 아닌데 책가방에 워낙 무겁다 보니 바퀴가 달린 가방을 줄줄 끌며 이 학원 저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모습 말이지요.


우리 세대 어린 시절, 학교가 파하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러다니던 시절을 요즘 아이들이나 엄마들에게 이야기하면 그 추억은 공감하되 그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순 없겠지요.


아이들 사교육을 담당하는 저이지만 또 다른 사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어깨가 축 늘어진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마음이 씁쓸해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