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자연유산을 경혐하고 나서...

그루터기 나무 2006. 10. 12. 12:40

 

 

왼쪽이 얼마전 유산된 새롬이 동생 임신 테스트. 오른쪽은 2년전 새롬이 임신테스트 ⓒ 윤태

 

짠순이 아내는 역시 짠순이 아내였다. 약국에서 구입하는 임신테스트기 5~6천원을 절약하기 위해 아들 새롬이가 예방주사 맞을 때를 기다렸다가 보건소에서 공짜로 확인했다.확인 결과 둘째 즉 새롬이 동생을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임신 5주째란다. 벌써 20일 전 일이다.


주위에서 둘째에 대한 은근한 압력이 들어왔고 우리 부부도 한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낳아 키워놓고 맞벌이를 하자고 했으므로 둘째 소식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족이나 주변에서는 기쁨보다 우려를 나타냈다.


내 '경제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도 벅찬데, 아니 부부 둘 살아가는데도 힘든데 어떻게 둘째를 키울 거냐 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하튼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됐다는 사실은 신비하고 기쁜 일이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며 '생활'을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부부는 바랐다. 게다가 조카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사내아이니 집안에서도 은근히 딸을 바랐다. 첫째 새롬이 때는 처음이라 임신관리를 잘 못했으니 둘째는 첫 아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실하게 해서 낳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20일이 지난 지금 둘째는 없다.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배 초음파가 가능하다는 7주째인 지난 주 산부인과에 들렀는데 아기집이 4주 크기란다.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예측 가능한 결과는 두 가지였다.


임신 주기를 잘못 계산했거나 태아가 처음부터 잘못돼 유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한 확률은 50대 50. 그러나 주기를 잘못 계산할 가능성은 희박했고 아내와 나는 안타까웠지만 유산 쪽으로 예상을 해야만 했다. 잘 먹고 잘 쉬면서 아기집을 키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비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예감이나 예상은 대체로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려는 노력과는 상관없이 강원도에 갔다 돌아오던 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내는 7주된 둘째를 그렇게 보내야만 했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완전유산이란다.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거의 다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유산 원인은 '모르는 게 원인'이란다. 컴퓨터 하드디스크 돌아가듯 아기가 만들어질 때도 복잡하고 세밀한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염색체 등 정밀한 부분에서 뭔가 오류가 나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유산 등에 관한 지식과 이론만큼은 나도 전문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아기가 왜 그렇게 돼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 원인에 대한 궁금증 내지 절망 등은 접어두기로 했다. 부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부터 잘못된 아기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기분이 꿀꿀했지만, 아내의 몸이 대체로 가벼워 안심은 됐다. 유산은 출산만큼이나 몸에 무리가 가지만 예상밖으로 그 정도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스스로를 위안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임산부 유산율이 15~20%고 불임부부가 30만 쌍이 넘는다는 통계치를 보며…, 내 주변에서 친구, 친척 등 지인들 중에도 몇 번씩이나 유산을 경험한 이는 물론 불임부부도 있기 때문이다. 불임부부에 비하면 유산은 어쩌면 행복한 걱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또한 우리에게는 첫째 새롬이가 있지 않은가.


둘째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새롬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졌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이런 것일까? 둘째가 생겼을 당시엔 새롬이에 대한 관심이 좀 덜해지는 듯하더니 둘째를 잃고 나니 예전보다 더 각별해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세상에 나오지 못한 둘째에 대한 아쉬움, 둘째에게 쏟아 부을 애정과 관심과 사랑을 그냥 슬픔으로, 아픔으로 간직하기보다는 그것을 첫째 새롬이에게 대신 전해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불임과 유산을 경험했거나 혹은 그 아픔의 한 가운데에 있는 부부들이여!


"용기를 냅시다."

 

그래도 첫째 새롬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윤태

 

 

* 둘째 아기 유산은 9월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