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보성 녹차밭 직접 가보니...

그루터기 나무 2006. 9. 28. 12:34
 

지난 토요일(23일) 광주광역시에서 후배 결혼식이 있었다. 버스 타고 혼자 당일로 다녀와야하나 승용차를 갖고 식구가 다 같이 다녀와야 하나 고민했다. 버스 타고 혼자 다녀오면 간단하겠지만 후배가 서운해 할 것 같고 차를 가지고 당일로 갔다오자니 경비는 경비대로, 고생은 고생대로 할 것 같아 어찌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차를 갖고 식구가 다 가기로 결정했고 광주까지 내려간 김에 하루 묵어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정을 하루 늘려 2박 3일간의 여행이 됐다.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외박 한 번 하지 못했던 아내, 이번 참에 실컷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우선 전남 지역 여행한 코스를 대략 설명하면 광주→나주 주몽 촬영지→보성 율포해수욕장→보성 녹차관광단지→남원 광한루→지리산 구룡폭포․뱀사골→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성남. 지금부터 그곳 관광지 풍경을 순서대로 적어볼까 한다.


후배 피로연을 마치고 어둑한 시간, 드라마 주몽 촬영지인 나주 공산으로 향했다. 촬영장 문은 닫혔고 그곳 경비아저씨께 물어 가까운 곳에서 민박을 했다. 다음날 오전 일찍 촬영장을 찾았다.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주몽 야외촬영장에서 내려다 본 영산강변. 광야도 말타고 달리는 촬영지이다. ⓒ 윤태

 

촬영장 입구 풍경 ⓒ 윤태

 

그런데 촬영장이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올라가는 길은 모두 비탈졌다. 게다가 바닥에 모래와 자갈까지 깔려 있어 유모차가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날은 덥고 힘은 들었지만 위에까지 올라간 보람은 있었다. 뒤에 펼쳐진 굽이굽이 영산강과 누렇게 익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게 불어오는지 마음까지 후련했다. 사실 드라마 주몽을 잘 보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 잘 몰랐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산강의 비경이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그곳 세트장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촬영장 입구 정면에 영산나루마을이라 하여 큼직한 호수가 있는데, 즐비한 장사들이 그 앞에 진을 치고 있었고, 이곳에서 나오는 폐수가 그 호수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복귀 후에 나주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보니, 호수가 오염되고 있다는 내용의 민원이 몇 건 올라와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는 왜 항상 이런 모습일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1시간을 달려 보성 녹차밭에 도착했다. 텔레비전 CF에서 늘 봐 왔던 보성녹차밭. 그 긴 이랑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녹차. 역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찌 저 높은 산을 깎아 이리도 넓은 녹차밭은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보성 녹차밭 전경 ⓒ 윤태

 

푸름이 끝이 없다. ⓒ 윤태

 

주몽 촬영지와 마찬가지로 녹차밭도 산에 위치해 유모차가 올라가는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올라가면 갈수록 드넓은 비경이 펼쳐지는데, 더 많이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음만은 설렜다.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니 이것이 자연의 힘인지, 인간의 힘으로 만든 것인지 그저 대단하다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온통 녹차뿐이었다. 휴게소에 들러도 녹차 아이스크림이 주를 이루고 있고 온갖 녹차 제품들로 가득했다. 어떤 관광객은 “녹차, 지겹다”를 연발하기도 했다. 결국 녹차밭에서만 서너시간을 머물렀다.


지도를 펼쳤다. 해남, 강진 방면에 율포 해수욕장이 보였다. 차머리를 돌렸다. 바닷가니 회가 있으리라 믿고 점심을 거하게 먹을 생각이었다. 서울에서 회집 가면 부수반찬(일명 스끼다시)이 엄청 나오지 않는가.


율포해수욕장 ⓒ 윤태

 

율포해수욕장에서 게 몇 마리 잡고, 사진 찍은 후에 횟집에 갔다. 온통 횟집 뿐이다. 마침 전어 축제가 한창이었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다른 메뉴도 달리 없었다. 3만원 짜리 전어회를 주문했다. 광어, 우럭회 등은 많이 먹어봤지만 전어회는 처음이었다. 아내도 나도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실망이었다. 서울에서 부수반찬이 넘쳐났다면 그곳에서는 단 한 가지도 먹을 만한 반찬이 없었다. 예닐곱 가지의 반찬이 나왔지만 별 볼일 없었다. 게다가 전어회도 몇점 먹어보니 뼈가 목에 걸리고 비리기만했다. 전어회를 전어무침으로 바꿨지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결국 전어회도 먹지 않고 찬물에 물 말아 먹어야만했다. 우리는 특별하게 생각하고 들어간 횟집인데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식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글쎄, 내가 전어의 참맛을 진정 모르기에 그럴수도 있었겠지.


날이 저물었다. 남원으로 차를 돌렸다. 춘향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저녁 8시 남원의 한 모텔에 짐을 풀었다. 서울, 경기 일대의 모텔은 인터넷에 으리으리한 시설을 갖췄지만 그곳의 모텔은 여관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 전용회선은 깔려있다고 주인장이 설명했다. 낮 동안 통 먹지 못한 새롬이한테 편의점에 가서 호박죽을 사 먹였다.

 

남원 광한루 ⓒ 윤태

 

광한루 연못속의 잉어와 금붕어떼들 ⓒ 윤태

 

다음날(25일 월요일) 아침 광한루를 찾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10년전 친구들과 한번 온 적이 있는데, 변함이 없었다. 춘향이가 뛰었다는 그네도 그대로였다. 팔뚝만한 연못의 금붕어들이 퍼덕이는데 깜짝 놀랄 정도였다. 다행히 광한루는 평지여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는 성남으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길목에 뭐가 있나 싶어 지도를 펼쳤다. 멀지 않은 곳에 지리산이 보였다. 구룡폭포와 뱀사골을 찾기로 했다. 구룡폭포 입구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관광철이 아니라 손님이 없었다.


구룡폭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논길을 달리고 자갈이 깔린 비탈길을 올라갔다. 도대체 어느 곳에 폭포가 있는걸까. 드디어 이정표가 나타났다. ‘구룡폭포 20m' 그러나 알고보니 어느 절이 홍보하기 위해 구룡폭포의 이름을 빌은 것이었다. 허탕만 치고 다시 구룡폭포를 향해 달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이정표가 나왔다.


지리산 구룡 폭포 ⓒ 윤태

 

그런데 폭포까지 승용차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당연히 산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새롬이를 안고 산을 내려가는데, 비탈이 심했다. 심한게 아니라 거의 절벽 수준이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줄까지 매어 있었다. 혼자서 오르내리기도 벅찬 구룡폭포 가는길.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아기를 한손에 안고 다른 손으로 줄을 잡아가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비지땀이 흘렀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새롬이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밧줄을 너무 세게 잡은 탓이었다. 가까이서 물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구룡폭포그 그 자태를 나타냈다. 이 깊은 산속에 어쩌면 저렇게 웅장한 폭포가 있다는 말인가. 파란 가을하늘처럼 맑은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그곳에 깊이 빠져 버렸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다음은 뱀사골. 지리산을 타고 넘는데 멀미가 났다.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 때문이다. 귀도 멍해졌다. 산 정상인 정령치 휴게소에 오르니 남원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기 때문에 요금을 받지 않지만 이곳 휴게소는 유료 주차장이다. 그만큼 비경을 보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한다. 산의 웅장함과 남원 시내의 비경을 보며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상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뱀사골 계곡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계곡에 물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계곡을 뒤덮은 지리산자락의 나무들, 가을 단풍이 들면 이곳 계곡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리라. 제 철이 아니라 단풍의 진수를 보진 못했지만 계곡의 물소리 그 자체가 드라이브길을 즐겁게 만들었다.


88올리픽 고속도로 지라산인터체인지로 들어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성남까지 올라왔다. 여행을 다녀온지 이틀이 지난 지금도 그 비경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지리산 정령치에서 내려다본 남원 시내 ⓒ 윤태

 

정령치에서 내려다 본 굽이길 ⓒ 윤태

 

 

 

아래 동영상은 전남 보성 녹차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