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81세 할머니, 한의대 입학 꿈꾼다

그루터기 나무 2006. 8. 20. 16:29
 


마포에 위치한 양원주부학교는 한국전쟁으로 남한으로 피란 나온 분들의 자녀, 전쟁고아, 극빈 아동 등 정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953년에 설립한 일성고등공민학교로부터 출발했다.


초기에는 주로 학령자인 극빈자와 근로청소년을 교육하여 왔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는 청소년은 줄고 나이 많은 성인들이 하나, 둘 입학하기 시작했는데 80년대 초에는 한 학급에 10여명의 나이 많은 주부학생들이 모였다. 그래서 83년부터는 주부들을 그들의 희망대로 따로 지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양원주부학교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한글도 모르고, 알파벳도 몰라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며, 자기 집 자동차 이름도 못 읽고 한자로 자기 이름도 못 쓰는 학생들이 이제 배움의 과정을 마치고 오는 24일 소중한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졸업식은 학생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못 배운 한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못 가르쳐 시집보낸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한도 풀어 주는 씻김굿의 현장이기도 하다.

 

팔십 노모의 손목을 잡고 등교하는 아침이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며 힘차게 공공근로를 하며 살아가는 오십 대 아주머니의 희망의 자리도 이곳에는 있다.


한의대에 입학하는 그날까지 나의 공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굳센 의지를 다지는 81세의 만학도도 이곳에서는 열네 살 중학생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떠한 현실도 자신의 소중한 인생임을 미소 속에 드러내며 공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학생들이 얻어낸 졸업장이기에 더욱 값질 것이다.


그럼 이번에 졸업하는 주부, 할머니 학생들 중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세 분의 사연(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만학의 꿈을 키우는 주부님들께 자그마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한의대에 가는 그날까지 -81 세 노익장의 꿈-


양정자 : 81세


내 나이 팔십 일 세. 나의 꿈은 아직 식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한의대에 진학하여 나처럼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싶은 것이 내 생애 마지막 소망이다.

 

나는 전주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 보려고 미용학원에 갔더니 글을 모르는 사람은 미용 기술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칠십이 다 된 나이에 한글을 기역, 니은부터 배워서 웬만한 실력을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다녀 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양원주부학교이다. 나는 양원주부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인정하는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내 나이 칠십 구 세에 말이다.

 

지금 나는 고입 검정고시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 수학 등 어려운 과목들이 남아 있어서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매일 매일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양원주부학교의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 가슴 속에는 ‘항상 배워야 산다.’라는 말이 꿈틀대며 내게 힘을 주곤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열아홉에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가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하늘나라에서 이 에미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검, 대검에 합격하고 한의대에 진학해서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어 낸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지금도 척수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허리가 안 좋은 상태이다. 광명시에서 양원주부학교가 있는 마포까지 통학하기엔 너무 힘이 들어서 학교 근처에다 방을 하나 얻어서 혼자 살고 있다. 아주 작은 방 하나에 나의 몸과 영혼을 뉘여 놓고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늙은 나이에 그 무슨 주책이냐고 비난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런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공부하는 즐거움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아느냐고 말이다.


           

사별의 아픔을 달래며 80에 시작한 중학생활

-이정희 : 81세


오늘은 아들이 와서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갔습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이라 먹고도 싶어서 갔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먹지를 못했습니다. 자식들 앞이라 내색도 못하고 맘으로만 펑펑 울었지요. 오늘따라 무척 외로워지더군요. 보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였습니다. - (어느 날 노트에서)

 

오남매를 키우느라고 부부생활은 살처럼 없어지고 남편의 몸에서는 점점 더 병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줄 모르고 감기약만 먹어댄 것이다. 과로로 인한 합병증으로 남편은 결국 80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남편은 법대 출신의 인텔리였고 난 중학교 1년을 마친 학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잘 어울렸고 평생 맘 고생 없이 잘 살아왔다. 그 결과로 아들은 미국 위스콘신 대학을 마치고 테네시에서 학위를 따 지금 대기업 전무로 일하고 있고, 큰사위는 카이스트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 아내 덕분이라고 늘 장모 앞에서 감사하다고 하는 장한 사위이다. 막내딸은 존스 홉킨스 대에서 유전역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따서 서울대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 막내사위는 서울대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딜 가나 자식들 자랑을 하고 있지만 애들 키우느라 결국 배우지 못한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할 뿐이다. 그런데다 작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자 외로움과 슬픔과 허무함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어디를 가도 슬프고 무엇을 해도 외롭고 의욕도 없어지고 진정으로 목숨을 이어가야 하나 하는 절망감만 팽배해졌다.

 

그래서 일찍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고 있던 양원에 맘을 독하게 먹고 입학해서 지금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과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왕 언니 대접을 잘 받고 있어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즐겁다. 하지만 맘 한 구석에는 남편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없이 서운해진다. 먼저 가버린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 더구나 나이가 한살씩 많아질수록 몸도 혼자서는 가누기가 힘들어진다.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는데 자식한테 짐을 주기도 싫고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해답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인자하고 지혜롭고 훌륭신 선생님들을 만나러 오늘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힘차게 학교로 간다.



항암치료 받으면서 공부로 마음을 달랩니다


정추임 : 51세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펐던 때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암 선고를 받던 순간인 것 같다. 순간 아무 생각도 없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할일이 많은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아직은 자식들 뒷바라지도 해줘야 되고 남편의 옆에서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내가 더 살아야 하는데 내게 무슨 잘못이 많아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왔는지, 캄캄하기만한 나의 마음은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내 몸이 다시 성해지지 않았고 아이들과 남편은 편함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을 울고 나니 모든 것이 포기가 되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음날부터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한 번 할 때마다 변해져가는 내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며 나는 점점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동안을 고통 속에서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끝내고 하던 일도 다 정리했다. 아들도 군대에 가고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애가 “양원주부학교”라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쓸쓸한 내 마음을 혹시라도 달래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무덤덤한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처음엔 적응을 하지 못해서 무척 힘이 들었지만 결석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목표로 지금은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몸이 끝이 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어떤 희망이 내 안에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혼자만 못 배운 것 같아 항상 움츠리고 살았는데 학교 와서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고 세상에 나처럼 못 배운 사람이 저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을 받으며 새 인생을 사는 기분으로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세상에는 하고자 하면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런 곳도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숨 가쁘게 살면서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사는 내가 불쌍해서 하느님이 내 인생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난학기 졸업식, 기쁨에 울고 있는 졸업생  사진:양원주부학교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

사진 : 양원주부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