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뉴스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기특한 며느리

그루터기 나무 2006. 8. 3. 13:49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짠해집니다. ⓒ 전남 해남 구지 조대희

 

 

 

윤태 어머니는 요즘 화투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마을회관에서 늦게까지 화투를 치곤 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돌아와서도 윤태 어머니는 화투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올해 65세인 윤태 어머니는 화투를 치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둘째딸의 말을 듣고나서부터 화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꼬박 1년을 넘기고서야 화투 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어깨 너머로 간신히 한글만 깨우친 윤태 어머니에게 4장의 똑같은 그림을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점수를 따지는 일은 곤혹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째서 5점이 되는 겨?”
“청단 3점하고 피가 열 한 장이니까 2점. 합이 5점”
“저거 붉은 띠 있는 거 석장은 홍단 아닌감?”
“홍단은 2장뿐이구먼, 한 장은 초단이여 병수 엄마”
“그래도 붉은 띠가 석장이면 1점 줘야 하는 거 아닌감?”
“아이구 윤태 엄마, 띠 다섯 장부터 1점 주는 거야, 여태껏 뭐 봤대 그래”
“….”

윤태 어머니는 젊은 아주머니들의 면박에 움찔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치매예방 때문에 화투를 배웠지만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젊은 동네 아주머니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수모를 당하더라도 꼭 참고 이렇게 1년 동안 배워온 것입니다

 

물론 집에 윤태 아버지가 계시긴 했지만 장난이라도 절대 화투장을 잡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터라, 윤태 어머니는 늘 혼자서 화투를 해야했습니다. 혼자 패를 돌리고 1인 3역을 해가며 화투를 했습니다. 그래도 윤태 어머니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윤태 아버지는 이런 아내를 보며 겉으론 혀를 찼지만 속으론 뿌듯했습니다. 느지막하게 나마 생활의 취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만 좀 하지. 잠 자게 불 좀 꺼”
“좀 배우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라요?” “상대해주지도 않으면서….”
“아이구, 할매야, 거 졸리지도 않어?”
“정히 졸리면 저쪽방 가서 주무시구랴”
“나는 더 있다 잘 테니….”
“정말 못 말리는 할매야”

윤태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흥이 나 있었습니다. 모레가 윤태 어머니 생신인데 도회지에 있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모두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눈치 볼 것 없이 자식들과 화투를 실컷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윤태 어머니는 벌써부터 설레고 있는 것입니다. 생신 전날 안산에서 내려온 둘째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화투가 그렇게 좋아?”
“우리 엄마 화투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것아, 잔소리 그만하고 담요나 깔어”
“알았어. 엄마 오늘은 딱 열 번만 돌리는 거야?”

그러나 화투는 벌써 스무 판을 넘고 있었습니다. 딸들은 일찌감치 떨어져나갔습니다. 어머니의 눈만 말똥말똥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낮 동안 식구들 음식 차리고 부엌 일 하느라 피곤에 지친 딸, 며느리들이었습니다.

어느덧 큰며느리도 슬그머니 들어가 버렸습니다. 남은 건 막내며느리인 윤태 아내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윤태 어머니는 화투를 그만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며느리인 윤태 아내가 그만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 “딱딱” 소리에 잠이 깬 윤태는 그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화투판을 벌이고 있는 아내가 안타까웠습니다. 윤태는 그 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화장실 가야한다는 핑계로 아내를 화장실로 불렀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말씀 드려줄까?”
“아냐, 신경 쓰지마. 얼른 들어가서 자”
“내일은 김치도 담가야 하고 모레는 출근도 해야할텐데 피곤하지 않아?”
“나야 오늘밤만 피곤하면 되지만 어머니는 내일부터 계속 심심해하실 거잖아. 그거 생각하면 오늘 밤새 해도 부족해”
“…….”
“나 피곤한 거 어머니 다 아시면서도 아무 말씀 못하시잖아. 그 마음 헤아려봤어?”
“잠시동안의 내 고통이 어머니께는 커다란 기쁨이 된다는 거 생각하면 나도 기뻐.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

윤태는 아내를 향해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자식인 윤태보다 며느리인 아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속깊게 헤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 글은 화투를 둘러싸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있었던 사실을 제 3인칭 시점에서 '동화형식'기법으로 재 구성한 것입니다. 그림을 그려주신 땅끝마을 전남 해남의 '구지' 조대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생나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