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발의 기봉씨> 어떻게 살고 있을까?
환한 미소의 주인공 엄기봉씨 ⓒ 윤태
모내기가 한창이던 지난 5월 중순 영화 <맨발의 기봉이> 실제 주인공인 엄기봉(43·충남 서산시 고북면)씨를 찾아가 힘겹게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 후 기봉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동안 법정대리인이며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 이장 엄기양(65)씨와 종종 통화하면서 기봉씨와 어머니 김동순(81)씨가 무탈함을 알 수 있었다.
불볕더위가 내리쬐던 지난
1일, 기봉씨 집을 다시 찾았다. 70일 만이다. 그동안 부지 문제로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기봉씨네 ‘새집 짓기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며칠 전 엄기양 이장과 통화하면서 장마가 끝나면 곧 집짓기가 시작될 것 같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겸사겸사 해서 이번에는
아내와 아들 새롬이와 동행했다.
유선이나 일명 '인권이 라이프'가 없어 KBS와 EBS만 보고 있는 기봉씨집 텔레비전 ⓒ 윤태
집에 다다르자 방안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귀가 어두운 어머니가 볼륨을
크게 틀어 놓은 것이다. KBS 1TV의 김병준 교육부총리 교육위 전체회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기봉씨는 웃통을 벗고
자신의 방에 있다가 깜짝 놀라 옷을 챙겨 입고 반갑게 맞았다. 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지난 5월보다 건강이 훨씬 좋아 보였다.
“아이구, 더워, 장마 끝나서 더워, 더워서 마라톤 못 뛰어.”
기봉씨가 먼저 운을 떼자 아내도 더운 날엔 마라톤
하지 않는 게 좋다며 거들었다.
“기봉씨, 집터 잡았다고 들었는데, 어디예요?”
하얀 모자를 챙겨 쓴 기봉씨를 따라
집을 나섰다. 산 쪽으로 약 100m 정도 이동하자 기봉씨는 초지 중에 소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곳에 집을 짓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봉씨는 산언덕 쪽으로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이 더운 날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걸까?
작업하는 인부와 이야기 나누는 기봉씨 ⓒ 윤태
가까운 곳에 컨테이너 집이 보였고 곳곳에 중장비로 땅을 파고 전신주를 심는 모습이 보였다. 기봉씨네 새집 공사를 위한
전초 작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봉씨는 컨테이너 집을 향해 가면서 전신주에 올라 작업하는 인부들과 큰 소리를 이야기하며 인사를 나눴다.
컨테이너 집에 도착하자 기봉씨는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기봉씨는 집 지을 땅을 마련해 준 5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이용성씨를 소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씨는 7년 전 이곳 땅을 샀고, 교회 연수원을 지으려다 주택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컨테이너 집에 임시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집짓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노년을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지내고 싶다는 것.
그러다가 기봉씨의 효심과 딱한 사정을 알게 됐고 300여 평의 땅을 기봉씨 가족을 위해 무상 영구 임대 해줘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것. 집 자체는 20∼30평 정도지만 텃밭과 함께 집 앞까지 길을 내야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땅이 필요하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왼쪽에 소나무 있는 곳에 집을 짓게 된다 ⓒ 윤태
결국 이씨의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기봉씨네 집을 짓게 된 것. 지금 심고 있는 전신주도 이씨와 기봉씨 집에
전기공급을 위한 것이다. 지하수도 이미 파놓았다. 전기만 들어오면 바로 이씨와 기봉씨 집에 1급수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현재
기봉씨 집 지하수는 논 한가운데에서 끌어올리고 있다. 좋은 수질 환경은 아니다.
이용성씨 기봉씨와. 지척 사이의 이웃이 될 그들,
아니 이미 이웃된 지는 한 참 됐고 그보다 더 끈끈한 정을 두 사람은 나누고 있었다.
나무 그늘 밑에 임시로 만든 이씨의 컨테이너
집이 기봉씨네 보다는 훨씬 시원하고 깔끔하기에 언제든지 와서 쉬라며 기봉씨에게 열쇠까지 맡겨 놓은 상태. 그동안 기봉씨는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고
인부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씨와 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인부가 딸에게 보여준다며 기봉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사용하는 매우 낡은 디카를 내밀었다. 흔쾌히 한 컷 찍어 줬다. 역시 유명인사는
유명인사였다.
기봉씨네 집터를 내 준 독지가 이용성 씨 ⓒ 윤태
다시 기봉씨 집으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여전히 TV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기봉씨 집은 유선도 없고 일명 ‘인권이
라이프’도 없다. 옥외용 안테나도 없고 단지 방안에 브이(V)자 안테나만 있다. 그러니 KBS와 교육방송만 나올 뿐이다. 그것도 깨끗하지 않게.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신을 취재해 간 방영물을 못 보는 일이 다반사며 녹화된 테이프를 보내줘도 비디오가 없어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문제도 새집에 들어가면서 모두 해결된 전망이다. 이장 엄기양씨는 1일 통화에서 “집들이 할 때 영화제작사와 배우 등을 주축으로 한 후원회에서
생활 가전 용품 등 세간을 해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며 “아직 설계도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당초 컨테이너나 조립식 등의 건물보다는 더
좋은 집을 짓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 이장은 ‘제대로 지어줄 모양’이라고 표현하며 후원회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현재 새집 건축을 위한 행정처리는 99.9% 완료된 상태. 어제(31일)도 건축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공사를 위해 집터에 다녀갔다고
한다. 이제 수도와 전기가 다 들어왔으니 본격적으로 건물만 올리면 된다. 엄 이장은 늦어도 8월 첫째 주부터는 집짓기 공사가 시작 될 거라고
설명했다.
거동이 불편한 기봉씨 어머니, 아이를 보시고는 환히 웃으셨다 ⓒ 윤태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기봉씨 어머니는 우리 아들 새롬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봉씨도 ‘나도 아기 때 밥 많이
먹고 컸다’며 아기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새롬이의 모습에서 두 모자가 잠시나마 행복을 맛보는 것 같아 흐뭇했다.
“할머니, 건강하게
계세요. 그래야 새 집 들어가시죠.”
아내와 내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기봉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마중을 나왔다. 얼굴 마주보면
씨익 웃고…,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 없었다. 기봉씨와 나는 두 손을 잡고 한참동안 악수를 나눴다.
먹을 게 생기면 엄마 준다며
챙기는 여덟 살 순수 청년 ‘맨발의 기봉씨’, 새집에서 엄마와 함께 행복을 만끽하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머지않아 그 날이 올 것이다.
새로 개발한 지하수, 앞으로 기봉씨는 이 지하수를 사용하게 된다 ⓒ 윤태
지금까지는 논에서 개발한 약수를 사용해왔다 ⓒ 윤태
새집으로 이사하면 이정도는 거뜬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 윤태
기봉씨가 직접 그린 일기도를 보여주는 동안 아들 새롬이가 만지며 관심을 보이자 기봉씨가 혹시 녀석이 일기도를 찢을것을 염려했는지 일기도를 챙겼다 ⓒ 윤태
취재를 마치고 아들 새롬이와 기봉씨와 기념 촬영을 했다 ⓒ 윤태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먼저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