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출판을 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루터기 나무 2007. 8. 21. 09:41

 

안녕하세요. 다음블로거 윤태입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쓴 <어른들을 위한 사실동화>를 미디어다음 블로그에 연재하다시피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겪은 크고 작은 감동적인 일들을 동화형식으로 엮은 것입니다. 읽어본 분도 계시고 지나쳐 버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제가 취재를 하면서 겪은 감동적인 사연을 동화로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동화(감동실화)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삭막하고 험한 사회속에서 조금이나마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감동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줘 그 흉흉한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온화하게 변화시켜가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제겐 꿈이 있습니다. 서두 없어 써 내려간 감동실화를 책으로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사연을 곁에 두고 잃으며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읽어도, 어린이가 읽어도 뭔가를 얻어갈 수 있는, 마음속으로 깨달을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출판을 위해 애를 안써본 건 아닙니다. 감동실화집 300만부 이상 판매된 <연탄길>시리즈를 낸 출판사에 원고를 의뢰해 봤지만 더 이상 출판 계획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인터넷 출판쪽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책이 나오면 100권을 구매를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결국 자기 돈을 들여 출판을 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자비를 들여 출판을 할 여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40편의 사실(감동)동화를 아래에 쭉 깔아놨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가치있고 의미 있으며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감동적인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래 글을 책으로 만들어 주실 출판 관계자님들의 연락을 말이지요. 책을 만들어 돈이 되네, 안되네, 이런 걸 따지기 앞서 이러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한다는 마인드를 가진 출판 관계자분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내용이 많이 깁니다. 아래 나와 있는 40편 이외에도 감동실화성 글은 더 있습니다. 차근차근 읽어보시고 이 내용들이 이번 겨울 따끈한 고구마처럼 사람들에게 훈훈한 열기를 심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출판 관계자분들이 계시다면, <감동실화집>으로 만들어주십시오.


참고로 아래 사실동화중 3편은 KBS 2TV < TV동화 행복한 세상 > 에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국 방영된 바 있습니다.

 

 

 

 

 

중국집 종업원, 그런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1. 귀머거리 중국집 종업원과 성식이


성식이는 중국집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종종 자장면 생각이 나면 중국집을 찾곤 했다. 집 근처에는 서너 군데 중화 요릿집이 있었는데 성식이는 중국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자장면 집만 갔다.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퇴근길에 성식이는 그 중화 요릿집에 들러 간 자장을 먹었다. 집에 들어가봐야 마땅히 먹을 밥이 없었던 성식은 그렇게 한 끼를 때우기로 했던 것이다.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난 성식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갑을 통째로 사무실에 놓고 왔기 때문이었다. 밖에 세워놓은 차에는 100원짜리 동전 몇 개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성식이는 안절부절 못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성식은 중간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다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정조로 말을 했다.


“저어, 죄송한데요. 제가 지갑을 사무실에 두고...”


성식이는 종업원의 어떤 대답도 떨어지기 전에 말을 이었다.


“길 건너면 바로 저희 집이거든요. 바로 갖다 드리면 안 될까요?”


성식이의 간절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종업원은 솔깃도 하지 않은 채 주방쪽으로 가버렸다.


성식이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종업원에게 순간 화가 났다. 성식이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걸음에 집에까지 뛰었다. 횡당보도가 있는 신호등까지 가지도 않고 넓은 도로를 단숨에 건넜다. 일부러 중국집 앞에 세워둔 차를 놓고 집에까지 뛰어가 간 자장 값 3000원을 가져왔다.


“자, 3000원 여기 있습니다. 치사하게 그러지 말아요. 3000원 때문에 사람을 못 믿다니... 왜요? 제가 3000원 떼먹고 저 차 타고 달아날 줄 알았나요?”


성식은 손님들이 있는데서 종업원을 향해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진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아까 길 건너 산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걸 못 믿어요?”

“...”


성식이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는 동안 그 종업원은 아무 말도 못하고 오히려 성식이를 응시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종업원의 이런 모습을 보자 성식이는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한참을 더 퍼부을 참이었다.


이때 2층에서 중국인 주인이 내려왔다. 손에는 그릇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더듬더듬 우리말로 성식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 죄송합니다. 얘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님을 못 알아본 모양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손님께서 급하게 나가시는 바람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주인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주인장은 성식이의 소매를 끌며 그 종업원이 보이지 않는 식당 모퉁이로 성식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성식이에게 말했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저 애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며칠 전에 저희 가게 앞에서 떨고 있길래 갈 데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입니다.”


성식이는 그제서야 자신이 화를 내고 있을 때 그 종업원이 왜 멀똥멀똥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또한 성식이는 그 종업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성식이를 안 보이는 곳으로 데려와 작은 목소리로 그 사정을 얘기해주는 중국인 주인의 배려 깊은 행동을 보고나서 성급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2. 엄마의 문자 메시지


30년 동안 구로 공단에서 재봉 일을 해온 영희 엄마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중국에서 옷이 대량 수입되면서 원단을 봉제해 옷을 만들 일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파로 영희 엄마가 다니던 공장을 비롯해 봉제공장 여러 군데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영희 엄마는 당분간 쉬기로 했다. 특히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만드는 일이 워낙 섬세한 작업이라 지난 30년 동안 영희 엄마의 시력은 매우 나빠져 있었다. 재봉일처럼 눈을 많이 쓰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병원에서 몇 번이나 알려줬지만 생계 수단이 그것밖에 없었던 영희 엄마는 줄곧 그 일을 해왔던 것이다.


“엄마, 이제 좀 쉬어요. 아빠랑 여행도 다니시고. 재봉 일을 너무 오랫동안 하셨어.”

“그래. 그런데 너희 아빠는 만날 술만 드시니 어딜 다닐 수가 있어야지.”

“방법 있나 뭐. 엄마 혼자서라도 다녀야지.”

“그러게 말이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때 영희가 엄마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출가한 영희네 집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 명희와 함께 돈을 모아 산 휴대폰이었다.


“엄마, 돌아다닐 때 급한 일 있으면 이 휴대폰으로 연락해. 전화 걸고 받을 줄 알지?”

“아이구 얘는, 무슨 급한 일이 있겠다고 비싼 휴대폰을 다......”


휴대폰을 받아 든 엄마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집에서 늘 술만 드시는 영희 아버지 때문에 딸들에게 전화 한번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던 영희 엄마로써는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진작부터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많이 망설였던 영희 엄마였다.


그 날 저녁 영희와 동생 명희는 엄마에게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3시간 동안 설명을 했지만 엄마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눈이 워낙 침침한데다 휴대폰은 처음이라서 첨단기능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또한 살아오면서 흰색의 긴 편지봉투만 봐온 엄마는 휴대폰 속 메뉴의 편지모양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그거 말고 왼쪽 네모 속에 브이자 처럼 돼 있는 게 메시지 보내기야.”

“어디? 아, 이거구나!”

“아이구 엄마는 참. 그건 전화번호 찾기 기능이라니까. 도대체 몇 번을 알려줘야 해?”

“...”


엄마는 침침한 눈을 끔뻑거리며 애써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지만 모든 게 너무나 낯설었다. 이럴수록 명희는 엄마한테 짜증이 났고 핀잔하는 듯한 말투로 엄마를 다그쳤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언니 영희가 입을 열었다.


“명희야,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한두 살 먹은 얘도 아니면서.....너 언니한테 한번 혼나볼래?”


명희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엄마도 무안했는지 멋쩍어했다.


“엄마 일찍 주무세요. 피곤해서 내일 어떻게 대구 가시려고? 그리고 그 문자 메시지 모르면 어때? 그냥 전화 걸고 받을 수만 있으면 돼지. 얼른 주무세요.”


그 날 밤 두 딸과 함께 잠을 자던 엄마는 비어 있는 건넌방으로 갔다. 건넌방에는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새벽이 돼서야 영희 엄마는 딸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영희 엄마는 오전 10시 대구행 버스를 타기 위해 차를 성남 모란터미널로 향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두 딸이 배웅을 갔다. 동생 명희는 어젯밤 엄마한테 퍼부은 핀잔이 미안했는지 배웅 가는 내내 엄마한테 아무 말도 걸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명희는 생각했다.


“엄마,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부었어요? 밤에 잘 못 주무셨나?”

“웅, 잠이 잘 안 오더라구. 그래서...”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 잘 다녀와요. 급한 일 있으면 이 휴대폰으로 꼭 연락하고... 그리고 어제 명희가 얘기한 문자메시지는 신경 쓰지 말아요. 중요한 거 아니니깐.”

“알았어. 걱정 말라니까.”


걱정 말라는 엄마의 얼굴은 무척 초췌해보였지만 환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엄마는 혼자서 싱글벙글했다. 영희와 명희는 그 까닭을 알 리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두 딸은 이불빨래를 하기 위해 양쪽 방에 있는 이불을 꺼냈다. 건넌방에서 이불을 꺼내던 동생 명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언니를 불렀다.


“언니 언니, 여기 와봐. 이불에 피가...”

“뭐라구? 이불에 왜 피가 묻어 있어?”


사실이었다. 이불 한 가운데에 야구공만한 크기의 면적에 피가 배어 있었다. 영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상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피가 묻은 거지? 어젯밤에 여기서 잔 사람도 없고... 명희야 혹시 너가 여기서 잤니?”

“아니.”

“그렇다면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 어제 우리하고 같이 주무셨잖아.”


두 자매는 의아해하면서 이불 빨래를 계속했다. 오후 두시가 다 돼 영희 휴대폰의 문자 도착알람이 울렸다.


“띠요옹.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영희는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그리고는 친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영희아 �희야 엉마 대구 질 왓타 치금 대구 떠미널이다. 명흐한떼 너무 뮈라고 하디 마라.”


“아니, 어떻게 엄마가 문자메시지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희와 명희는 어리둥절했다. 어젯밤에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다 결국 포기했는데 어떻게 해서 엄마가 문자를 보낼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그랬다. 밤새 휴대폰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을 어렴풋이나마 익혔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밤샘 하느라 피곤해서 코피가 쏟아졌고 결국 이불에 묻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렇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엄마는 대구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한시간 걸쳐 딸들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로 두 번이나 다 쓴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침침한 눈으로 코피까지 쏟으며 밤새 휴대폰과 씨름을 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영희와 명희는 눈물이 솟았다.


그 날 저녁 동생 명희도 영희 휴대폰으로 온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것도 못하냐며 엄마한테 못되게 굴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영희와 명희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찍힌 휴대폰을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3. 속 깊은 친구


오늘은 승호네 학교가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승호 누나가 엄마 대신 승호의 김밥을 싸고 있었다. 그러나 승호는 소풍 가는 날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소풍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승호는 늘 생각했다. 변변한 김밥 한 줄 싸가지 못하는 자신이 창피하기 때문이었다.


ꡒ승호야,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 콜라 사가는 거 잊지 말고. 산에 올라가면 더 비싸니까 미리 사 가지고 올라가. 알았지?ꡓ

ꡒ....ꡓ


승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몇 푼 안 되는 소풍비 때문이었다. 엄마가 아침에 일찍 논에 나가면서 쥐어준 3000원이 소풍 비의 전부였다. 게다가 김밥에는 햄이나 소시지, 게맛살은 없고 시금치와 단무지만 들어 있었다. 승호네는 가정 형편 상 김밥 재료를 사기 위해 읍내까지 갈 여유가 안됐던 것이다.


ꡒ얘, 승호야 이거 빼 놨어.ꡓ


시무룩하게 나가려는데 누나는 까만 비닐봉투에 든 것을 건네줬다. 찐 밤이었다. 이 밖에 가방 안에는 소금으로 우려낸 말뚝 감, 찐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승호는 소풍날 용돈 대신 밤이나 감 등 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 싸가곤 했다.


ꡒ승호야. 가방 잃어버리지 말고 잘 다녀와.ꡓ


사실 승호는 가방도 불만이었다. 엄마가 시장이나 외갓집에 갈 때 가지고 다니는 손잡이 달린 작은 가방이 승호의 소풍 가방인데 할머니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 승호는 소풍갈 때마다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명자네 집 담벼락 모퉁이에서 수인이가 승호를 불러 세웠다.


ꡒ승호야, 같이 가자.ꡓ

ꡒ수인이구나.ꡓ

ꡒ야, 그런데 너 소풍날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러냐?ꡓ

ꡒ어, 그....그냥.ꡓ

ꡒ짜아식.ꡓ


수인이는 승호의 오른쪽 등을 살짝 내려치고는 어깨동무를 한 다음 씨익 웃었다. 수인이는 뭔가를 눈치 챈 듯한 표정이었다. 


옥봉산으로 가는 소풍 길은 아름다웠다. 날다람쥐가 밤이나 도토리를 물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풍경도 보였고 불을 질러 놓은 듯한 형형색색의 단풍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승호는 이런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기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점심시간이 되었다.


ꡒ자, 점심시간은 1시까지입니다. 멀리 가는 사람 없도록....ꡓ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친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승호는 이 순간이 너무 싫었다. 형편없는 자신의 김밥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져온 김밥을 안 먹으면 어쩌나 하고 승호는 내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모여 앉아 김밥을 꺼내 한데 놓았다. 처음에는 어느 김밥이 승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승호의 김밥을 한 번 집어먹은 친구들은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승호 역시 애써 자신의 김밥을 먹고 있었지만 역시 맛이 없었다. 그럴만한 것이 기본적으로 소시지나 햄 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수인이가 승호의 김밥을 집중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김밥을 승호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ꡒ야, 수인아 천천히 먹어라 임마. 체하겠다.ꡓ


승호는 급하게 김밥을 먹는 수인이의 등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달랬다. 그건 왠지 모를 고마움의 표시였다. 바로 그때 수인이의 나무젓가락에 쥐어져 있던 승호의 김밥이 잔디위로 굴렀다. 그러자 수인이는 손으로 김밥을 주워들고 ꡒ훅ꡓ 하고 불더니 먹어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일제히 수인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수인이는 태연하게 말을 꺼내며 씩 웃었다.


ꡒ야야, 먹어도 안 죽어. 하여간 깔끔한 척 하기는...ꡓ


친구 승호를 위해 수인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땅에 떨어진 김밥을 주워 먹은 것이다.


김밥을 먹은 다음에 친구들은 저마다 간식을 꺼내들었다. 빠다코코넛비스킷, 초코파이 등 주로 과자였다. 그러나 승호는 아까부터 콜라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가방 속에 있는 찐 밤, 찐 고구마, 우린 감은 꺼내지도 못하고 우쭐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수인이가 승호를 향해 물었다.


ꡒ야, 너 그 안에 있는 거 뭐냐?ꡓ ꡒ이리 내 봐 임마.ꡓ

ꡒ어...밤하고 고구마...ꡓ

ꡒ야, 이 자식이 맛있는 거는 지가 다 먹으려고 그러네. 이리 줘봐.ꡓ


수인이는 승호의 가방 속에서 찐 밤, 찐 고구마 등이 들어 있는 봉지를 꺼내들며 대신 자기 가방 속에 들어 있던 과자를 꺼내 승호에게 건네줬다.


ꡒ야, 나 요즘 충치 생겨서 단 과자는 못 먹겠더라. 엄마가 어제 사 오셔서 가지고 오긴 했는데... 아, 잘 됐다. 승호 니가 이거 다 먹어라. 나는 우린 감하고 밤이나 먹어야겠다.ꡓ


수인이는 승호 가방에서 꺼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우린 감 껍질은 벗기지도 않고 잘도 씹어 먹었다. 승호는 오린 라면봉지를 씌워 노란 고무줄로 봉해놨던 병콜라 마개를 열어 수인에게 건네줬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신 수인이가 또 입을 열었다.


ꡒ임마, 그리고 소풍이 왜 소풍이냐? 오늘은 먹고 재밌게 놀라고 있는 날이야. 가지고 온 거는 다 먹고 내려가야지. 올라올 때 힘들지도 않데? 하여간 뭘 모른다니까.”


결국 승호가 싸온 음식은 수인이가 모두 먹어치웠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친구들은 산을 내려왔다. 학교 근처에 다다랐을 쯤 수인이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집쪽으로 뛰어갔다. 승호는 수인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걸음을 되돌려 문방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2500원짜리 태권브이 3단 변신 로봇을 샀다. 혹시 소풍비 3000원 받았다는 사실을 수인이가 알아차릴까봐 일부러 수인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문방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저녁밥을 먹는데 누나가 승호에게 물었다.


ꡒ승호야, 오늘 우린감 안 떫데?ꡒ너 가고 나서 몇 개 먹어보니깐 제대로 안 우려진 게 많더라ꡓ

ꡒ어? ꡒ어.. 괜찮던데...ꡓ


승호는 그 감을 수인이가 다 먹었다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먹을 만 했다고 누나한테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낮에 수인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왜 집에 있는 감만 제대로 안 우려졌는지 승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승호는 수인네 집 앞에서 수인을 불렀다.


ꡒ수인아, 학교 가자.ꡓ


그런데 수인이 대신 수인이 엄마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대문 밖으로 나왔다.


ꡒ승호 왔구나. 우리 수인이가 어제 저녁부터 배탈이 나서 꼼짝을 못하고 있거든.ꡓ

ꡒ예? 배탈이라고요?ꡓ

ꡒ그래, 어제 소풍가서 뭘 그렇게 많이 먹었는지 밤새 설사하고 토하고.....죽는 줄 알았어.ꡓ

ꡒ....ꡓ


승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ꡒ오늘은 학교에 못 갈 것 같구나. 그래서 말인데 승호 네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줄래?ꡓ

ꡒ네, 그럴게요. 안녕히 계세요.ꡓ


승호는 얼굴도 못 들고 모기 만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ꡒ아이구 미련한 놈. 감이 떫으면 먹지 말지....바보 같은 놈.ꡓ


승호는 떫은 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맛있게 먹었던 수인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꼈다.



4. 장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명수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덕분에 명수네는 시골에서 쌀을 비롯해 온갖 야채들을 갖다 먹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로 식료품비를 줄일 수 있어 명수 아내는 좋았다. 지난 주말에 시골에 다녀온 명수는 이번에도 무, 감자 등 야채를 많이 가져왔다. 아내는 명수가 좋아하는 쇠고기 무국을 끓여주기 위해 다른 야채보다 무를 더 많이 챙겨왔다.


그런데 명수 아내는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들을 종종 친정에 갖다 주었다. 어떤 때는 쌀을 퍼다 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콩을 좀 덜어 주기도 했다. 이번에는 큼직한 무 대여섯 개를 갖다 주었다. 사실 친정집의 생활이 어려워 아내가 신경을 꽤 쓰는 편이었다.


“여보, 내가 친정집에 야채 갖다 주는 거 기분 안 나빠?”

“아냐, 다 같은 부모님인데...”


그러면서 명수는 말끝을 흐렸다. 


물론 아내가 친정 집에 곡식이나 야채를 갖다 줄 때는 남편인 명수에게 갖다 줘도 되냐고 반드시 물어봤다. 명수가 장인, 장모님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처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시골에서 고생하며 농사지은 곡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약간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명수 생각엔 서울에서만 살아오신 장인, 장모님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명수는 그런 마음을 아내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에 장모님이 성남 명수네 집에 오셨다. 서울 영등포에서 성남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장모님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잔뜩 이고 손에 비닐봉투도 들려 있었다. 길이 좁고 가팔라서 마을버스도 들어오지 않은 딸집에 장모님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무엇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명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 장모님과 아내의 대화가 명수의 귀에 들어왔다.


“엄마, 이 상추쌈 어디서 났어? 굉장히 싱싱한데, 금방 따온 거 같아.”

“응, 이거, 저번에 네 시댁에서 가져온 상추씨 옥상 화분에 심었는데 이번에 비 오고 나서 많이 자랐더라. 그래서 삼겹살 싸먹으라고 따왔어.”


그러면서 장모님은 정육점에서 사온 삽겹살까지 내놓았다.


“와, 역시 우리 엄마네.”   


아내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장모님도 신이 난 듯 했다.


“네 신랑, 몸이 좀 허약한 것 같더라. 잘 좀 먹여라.”

“알았어, 잘됐다. 그러잖아도 오늘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그런데 엄마 이건 뭐야?”


아내는 파란색 플라스틱 통을 열면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응, 그거 총각김치야. 저번에 네가 준 무로 담았어. 맵지는 않을는지 모르겠다.”

“어? 그거 엄마 김치 담가 먹으라고 준건데....”

“집에 남겨놨어. 네 아빠하고 둘 뿐이어서 많이 먹지도 않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가져오면 내가 더 서운하지.”


그동안 몇 번 처갓집에 갔었지만 명수는 상추가 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처갓집 대문 위 옥상 화분에 상추가 심어져 있었는데 명수는 그동안 한번도 옥상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추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퍼다 줬다고 생각했던 무는 맛있는 김치가 되어 되돌아왔고, 상추는 씨앗으로 처갓집에 간지 두 달 후에 싱싱한 야채로 되돌아왔다. 결국 장모님은 딸, 사위자식 어떻게든 더 먹이려고 애를 쓰신 것이다.


장모님과 아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명수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모님이 이렇게까지 신경써 주신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더 많이 갖다 드릴 걸 하며 그제서야 후회했다.



5.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밥을 담던 기덕이는 맞은편에서 밥을 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 여자가 김치, 감자볶음, 돈가스 등 반찬을 지나치게 많이 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덩치를 보니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저 많은 반찬을 다 먹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기덕이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저렇게 많이 퍼 담는 심보는 뭐람?"


요즘 들어 굶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반찬을 끊임없이 많이 담아 결국 짬통에 버리게 될 그 여자의 행동이 너무 괘씸하게 보였던 것이다. 기덕이는 그 여자가 반찬을 얼마나 남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그 여자와 보조를 맞춰가며 식판에 음식을 담았다. 느리게 밥을 담는 기덕이 때문에 뒤에 오는 사람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덕이는 맞은 편 여자의 동태를 계속 살폈다.


식판에 밥을 다 담은 기덕이는 여자의 뒤를 슬슬 따라갔다. 그리고는 그 여자 옆에 자신의 식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고 여자도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힐긋 힐긋 시계를 쳐다봤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한명의 여자가 손에 뭔가를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언니."

"야, 너 왜 이제 오니?"

"미안해 언니, 막 나오려는데 전무님이 부르셔서....지출내역서가 안 맞는다고해서 그거 맞추고 오느라고...."

"알았어 그래, 얼른 밥 먹자. 다 식겠다."


친언니인지 아는 사이인지는 몰라도 두 여자는 또래로 보였다. 그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조그마한 가방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도시락이었다.


"얘, 너는 오늘도 장아찌니? 좀 맛있는 거 좀 싸가지고 다녀."

"아휴, 언니는... 내 사정 뻔히 알면서 그래? 가뜩이나 차비도 올라서 걱정인데."

“그래도 그렇지..."

"헤헤, 장아찌 반찬이 도시락 싸기 가장 쉬워. 아침에 시간도 없고..."

"알았어. 밥이나 먹자."


언니인 듯한 그 여자는 김치, 돈가스, 감자볶음 등을 덜어 그 여자의 도시락에 얹어주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기석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돈을 절약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이들의 또 다른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너네 엄마 병원비 때문에 큰일이다. 어떡하니?"

"그러게 말야. 이번 수술만 잘 되면 우선 큰 고비는 넘긴다고 하는데...."

"....."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식대를 절약하는 같은 직장 후배를 위해 매일 같이 반찬을 많이 퍼다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이었다. 기석이는 점심을 먹는 내내 목이 메여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6. 취업선물에 먼지 쌓이면 안돼


명섭이는 직장을 그만둔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지만 새 직장에 들어가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워낙 불황인 탓에 기업들도 인원을 줄이는 상황에서 취직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물론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에 빚만 늘어갈 뿐이었다. 살림을 도맡아 하는 아내의 한숨은 날로 늘어만 갔다.


“여보, 좀 알아봤어요?”

“응, 계속 알아보는데 마땅치가 않네.”

“급여가 낮더라도 우선 임시라도 들어갈 데 없을까요? 다니면서 다른 직장 알아보게.”

“나와 있는 일자리가 없네. 요즘 워낙 불황이라...”


사실 명섭이는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아 번번이 포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명섭이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심지어 온 몸이 쑤셔오기까지 했다. 일을 하지 못해 병이 난 것이다.


명섭이가 전에 직장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며 가방 메고 하루 종일 사람 만나러 돌아다닐 때는, 비록 힘들고 피곤해도 이렇게까지 몸이 아프진 않았다. 활동을 안 하니 소화도 안 되고 밥맛도 없고, 심적 부담은 늘어가니 당연히 병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명섭이는 오히려 영업사원이었던 그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행복한 추억에 잠겼던 명섭은 그 날, 영업사원 때 메고 다녔던 검은색 가방을 어깨에 걸쳐 보았다. 너무 가벼웠다. 가방 속에 책을 몇 권 넣고 안방, 거실을 돌아다녔다. 마치 직장에 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진 명섭이는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때 마침 퇴근해 들어오던 아내가 거실 유리창을 통해 이 모습을 보고 말았다.


“여보, 지금 뭐하는 거예요?”

“어, 와...왔어? 옛날 생각이 자꾸 나서...”


명섭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말을 더듬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여보, 저...우리 큰일 났어요.”

“왜?”

“사실은 석 달 전부터 생활비가 부족해서 아는 사람한테 돈 빌리고 있어요. 당신 취직할 때까지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빌린 돈이 벌써 3백만 원이예요“

“...”


명섭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힘이 빠지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결혼 전 명섭이가 들어놓은 이자가 꽤 높은 적금을 그동안 아내가 빠짐없이 넣었고 한번이라도 거르거나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아내는 돈을 꿔서 채워 넣고 있었다.


“여보,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여태껏 많이 기다렸지만...”

“....”


그러나 이번에는 아내가 아무 말도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취직하기를 바라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순 있었지만 이럴수록 명섭이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그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해서는 돈을 더 많이 주는 직장을 찾아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시름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명섭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주일 전에 면접을 봤던 한 회사에서 명섭을 채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월급이나 다른 조건을 구체적으로 협의해야하니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한번 회사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명섭이보다 아내가 더 기뻐했다.


“여보. 정말 잘 됐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죠?”


명섭의 아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뭔가를 새롭게 꾸려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아내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그 날 저녁 명섭과 아내는 영화를 한편 봤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영화였지만 명섭의 눈과 귀에는 영화가 들어오지 않았다. 양복 입고 출근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얼른 화요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해 들어온 아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큼직한 선물을 내놓았다.


“여보, 정말 축하해요.”

“웬 축하? 그런데 무슨 선물이 이렇게 큰 거야?”

“당신이 평소 갖고 싶어 하던 거예요. 펼쳐봐요.”

“뭘까?”


명섭이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 선물 속에는 새카만 가방과 구두 그리고 조그만 구두칼이 담겨 있었다. 명섭은 지난 3년 동안 가지고 다녔던 가방이 지퍼가 벌어지고 또 작다고 아내에게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이와 함께 비 오는 날엔 구두에서 물이 새 발이 퉁퉁 불었던 것을 아내는 속으로 늘 간직하며 마음 아파했었다.


“여보, 어때요? 가방 지퍼 벌어지고 좁아서 서류 넣기도 힘들고 구겨진다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이 구두 3년 동안 갖고 다니던 구두 표로 산거니까 잘 신어야 돼요. 걸음 험하게 걷지 말구..., 새 신발이라 처음에는 손으로 신기 힘들 거예요. 구두칼 가지고 다니면서 쓰세요. 작아서 갖고 다니는데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순간 명섭은 눈물이 핑 돌았다. 휴대용 구두칼까지 챙겨주는 아내의 마음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진작에 취직하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그 날 밤 아내가 잠든 사이 명섭은 새 구두를 신고 가방을 멘 채 안방과 거실을 돌아다녔다. 내일 그 회사에 협의하러 갈 생각을 하니 잠도 오지 않고 한없이 들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출근한 직후 명섭은 채비를 서둘렀다. 새 구두를 신고 굳이 멜 필요도 없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출입문을 통과하려고 할 즘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명섭씨죠?”

“예. 그런데요.”

“여기 ○○ 회사인데요. 오늘 구체적으로 협의하기로 했죠. 그런데 다른 분이 이미 들어오기로 약속이 돼서...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명섭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명섭이보다 급여를 낮게 제시한 사람이 먼저 뽑힌 것이었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이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잘 하고 오라던 아내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졌다. 명섭은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집을 향해 뛰었다.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없이 뛰었다.


집에 도착한 명섭이는 컴퓨터를 켜고 자기소개서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취직선물에 먼지가 쌓이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7. 차마 마지막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경민이는 3년 전 아내와 결혼하면서 금연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담배를 다시 피우면 이혼도 감수하겠다며 각서까지 썼다. 그러나 금연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경민은 낮에 회사에서 담배를 태우고 양치질은 물론 껌을 몇 개씩 씹고 퇴근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털어내려해도 찌든 담배냄새는 조금씩 풍겨왔다.


“당신, 담배냄새 나는데. 어디, 왼손좀 내밀어봐.”


아내가 경민이의 왼손을 잡아당기며 냄새를 맡으려하자 얼른 손을 빼며


“무슨 소리야? 내가 각서까지 썼는데 무슨 담배를 피웠다고 그래?”

“들어오자마자 담배냄새가 나는데 이건 뭐야? 내 코는 못 속여.”

“아, 그...그거 사무실에서 정과장님하고 같이 있다보니까... 과장님이 하루에 두 갑씩 피우잖아. 나한테도 냄새가 배었어.”

“정말이야? 그런데 냄새가 너무 강한데, 이리 와서 입 한번 벌려봐.”

“나 참, 왜 그래? 안 피웠다니까. 얼른 밥이나 줘. 배고프단 말야.”


경민이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다시 한번 양치질을 했다. 저녁밥 달라고 해놓고는 양치질을 해버린 것이다. 경민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큰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경민이가 금연했다는 것을 아내에게 떳떳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이러한 행동은 아내의 의심을 더 키울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당신 퇴근해서 들어오면 왜 뽀뽀도 안 해줘? 뭐 찔리는 거 있남?”

“허허, 무슨 소리? 이리 와.”


퇴근해 들어온 어느 날 경민이는 아내에게 다가가 번개같이 볼에 뽀뽀를 하고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뽀뽀할 때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재빠른 남편의 행동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심증은 분명한데 물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담배 생각이 간절했던 경민이는 차에 신문을 두고 왔다며 가지러 간다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설마 옷까지 챙겨 입고 4층에서 저 아래 골목에 세워 둔 차 있는 곳까지 쫓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 슬금 나온 남편은 차 앞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고는 트렁크 문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낸 후 주위를 살피더니 집 반대 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골목에 쪼그려 앉아 서둘러 급하게 담배를 빨아대는 장면을 아내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는 질겅질겅 껌을 씹고 그것도 미덥지 않았는지 주머니에서 귤을 꺼내 까먹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 귤까지 챙겨왔네.”


그 날 저녁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무슨 이유였을까.


다음날도 남편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차에 서류를 놓고 왔다며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물론 경민은 일부러 서류봉투를 차에 두고 왔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가로막았다.


“여보, 잠깐, 내가 갔다 올게, 어차피 슈퍼에서 양파도 사야하거든. 오늘 고기 재놔야 내일 먹지.”

“아....아냐, 내가 갔다 올게. 양파 얼마짜리 사면 돼?”

“아냐, 내가 갔다 올게. 저번처럼 깨지고 썩은 양파 사 오려고? 내가 직접 골라야지.”

“아니, 그래도 내가...”


순식간에 차 열쇠를 낚아챈 아내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만약 트렁크를 열기라도 하면 모든 게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경민이는 아내가 설마 트렁크까지 열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단지 경민이의 간절한 바람 일뿐이었다.


10분 후 아내는 양파 한 자루와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경민이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서류봉투를 건네주며 말을 건넸다.


“자, 여기 있어.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차에 놓고 오는 게 그리도 많아?”

“응, 요즘 들어 부쩍 깜빡깜빡하네.... 헤헤”


경민이는 놀란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리며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동차 트렁크보다 더 안전한 곳이 담배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다음 날 출근한 경민이는 트렁크에서 담뱃갑을 찾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후미진 구석에 있어야 할 담배와 라이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오렌지색 포장지에 싸인 선물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한 일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경민이는 조심스럽게 선물을 풀었다.


“자기야, 담배 끊기가 그렇게 힘들면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거짓말하고 숨어서 피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담배 피우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왜 금연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오늘 일찍 들어와. 자기 좋아하는 우렁 된장 해놓을게. 사랑해 자기야.”


이렇게 씌어진 아내의 메모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상자를 여는 순간 담배 한 개비와 50원짜리 성냥갑이 들어 있었다. 성냥갑 속에는 역시 1개의 성냥개비만 들어있었다. 경민이는 이 담배 한 개비를 끝으로 금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간절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지난 봄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서 아내와 손잡고 찍은 사진이 하트모양의 작은 유리액자 속에 담겨져 있었다. 액자 위쪽에는 하얀 색 수정 펜으로 쓴 ‘금연’ 글자가 아주 자그맣게 보였다.


경민이는 마지막 담배에 차마 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대신 담배를 두 동강 냈다. 어젯밤 차 트렁크를 열며 이 선물을 넣는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8. 화초콩아, 잘 살아 있어


대전에서 청주로 학교를 다니게 된 수홍이는 당분간 독서실에서 생활을 하기로 했다. 전세를 얻어 4년 동안 자취생활을 하려면 좋은 집을 구해야 하는데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우선 한 달에 10만원 하는 독서실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대신 다음 학기엔 아버지께서 돈을 마련해 집을 구해 주기로 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계신 아버지는 이번 여름 방학 때 황소 서너 마리를 팔기로 한 것이다. 아직 소가 다 크지 않았기 때문에 독서실 생활이 불편하더라도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 독서실 생활은 불편하고 지루했다. 수업이 끝나고 들어오면 조용히 앉아 공부하거나 좁은 통로에 누워 있는 게 전부였다. 나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 사실상 옆방과 경계가 없어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일도 쉽지 않았다. 특히 밤 10시가 넘으면 독서실 현관문을 잠갔기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힌 생활을 해야만 했다.


수홍이는 답답한 마음과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층 독서실 창가에서 물끄러미 맞은편 주택가의 빌라를 보고 있던 수홍이는 무릎을 딱 쳤다.


“그래 바로 저거야.”


수홍이 본 것은 맞은편 빌라의 창가 베란다에 올려놓은 화분이었다. 수홍이는 곧바로 화원으로 달려갔다. 무슨 식물을 키울까 생각하던 수홍이는 화려한 꽃이 피는 화초콩을 심기로 했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꽃나무를 사는 것보다는 씨앗을 심어 싹이 트는 모습부터 보고 싶었다.


수홍이의 화초콩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저녁 수홍이는 화분에 화초콩 세 개를 심고 물을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물을 주고 학교에 갔다. 그날 저녁까지도 화초콩은 싹을 틔우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수홍은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화분의 흙을 살짝 파보았다. 1센티미터 가량의 싹이 터 있었다. 단지 흙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수홍이는 하루 종일 화초콩 생각에 빠져있었다.


“지금쯤 싹이 올라왔을까? 햇볕이 너무 강해서 혹시 말라죽은 건 아닐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수홍의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수홍이가 이렇게까지 신경쓰는 이유는 그의 성격이 너무 세심한 탓이기도 했다. 여하튼 화분속의 화초콩이 있어 수홍은 독서실에서의 답답함이나 외로움을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다.


화초콩 생각에 뒤척이던 그 날 밤 수홍이는 세 개의 가녀린 희망을 보았다. 손전등을 비췄을 때 뽀얀 색깔의 세 녀석이 가녀린 손을 흙 위로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와, 정말 반갑다 화초콩아.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수홍이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치 몇 십 년 만에 이산가족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수홍이는 뛸 듯이 기뻤다. 화초 콩으로 인해 인생의 희열을 맛보는 듯 했다.


이튿날부터 수홍이는 화분을 창가 안쪽에 두었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독서실 벽에 압정을 꽂아 실을 매달고 실 끝에 빨래 깍지를 묶은 다음 신문지를 물려 햇빛 가리개도 만들어주었다.


화초콩은 하룻밤 사이 3센티미터 정도 자랐다. 처음에는 볼펜을 꽂아 주면 잘 타고 올라갔는데 이젠 50센티 정도의 지지대가 필요했다. 수홍이는 우암산에 올라가 올곧은 싸리나무를 몇 개 꺾어다 지지대를 세우고 줄기가 이탈하지 않도록 노끈으로 묶어주었다.


4월 중순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수홍이는 화분을 바깥 창가에 내놓았다. 물을 주는 것보다 자연적인 습기를 맞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란 지지대가 좀 불안하긴 했지만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독서실 앞 두꺼비 슈퍼에서 컵라면을 사들고 계단에 앉아 먹고 있었다. 독서실 방으로는 어떤 음식도 가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독서실의 학생들은 종종 계단에 앉아 컵라면을 먹곤 했다. 때마침 비가 내리는 탓에 수홍이는 따끈한 컵라면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 때 현관 창문 밖으로 가로지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화초콩이 심어져 있던 화분이 독서실 3층 창가에서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수홍이는 먹던 컵라면을 내던지며 황급히 내려갔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빌며 1층을 향해 뛰었다. 


붉은 플라스틱 화분은 산산조각이 났고 화초콩 줄기도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지대에 노끈으로 줄기를 묶어 놨기 때문에 뿌리가 상한 것 같진 않았다. 수홍이는 무너지는 억장을 추스르며 컵라면 용기에 화초콩을 옮겨 심었다.


날이 밝자 수홍이는 우암산 자락 인적이 드문 곳의 나무 밑에 화초콩을 옮겨 심었다. 독서실에서는 더 이상 화초콩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별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날 밤 수홍이는 꿈을 꾸었다. 붉은 꽃이 활짝 핀 화초콩이 우암산 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의 꿈을....


그로부터 6개월 후. 2학기가 되면서 수홍이는 꽤 쓸만한 전셋집을 얻었다. 그동안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친구들과 모여 술도 마시고 TV도 보고 기타도 치며 놀았다. 독서실에서의 갑갑한 처음 기억은 모두 잊혀지는 듯 했다.


10월 초 가을빛이 감돌쯤 수홍이는 혼자서 우암산에 올랐다. 가을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싶어서였다. 수홍이의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사실 수홍이가 화초콩을 잊은 건 아니었다. 컵라면에서 옮겨 심은 그 날 이후 어쩌면 화초 콩이 말라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 그동안 일부러 우암산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 두려운 마음이 많이 삭혀져 있었고 언젠가 한번은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큰마음 먹고 산을 오른 것이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수홍이는 화초콩이 심어져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화초콩이 어떤 형태로 있던간에 수홍이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곳에 다다랐을 즈음 붉은 꽃들이 희미하게 퍼져있는 풍경이 희미하게 보였다. 수홍이는 한걸음에 화초콩이 심어진 곳까지 뛰어갔다.


그날 수홍이는 우암산 자락에서 붉은 궁전을 보았다. 화초콩을 묻고 돌아온 날 밤 꿈에서 보았던 붉은 화초콩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수홍이의 눈에는 기쁨인지, 반가움인지 아니면 그 당시의 슬픔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마구마구 솟았다.



9. 천사표 현균이


현균이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천성이 착한 탓이었다. 독서실에서 새우잠 자면서 생활하고 새벽에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에 다니는 현균은 착하기도 했지만 한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현균은 심지어 차비까지 털어 친구들을 돕고 대신 걸어서 독서실에 들어갈 때도 많았다. 이런 현균이를 반 친구들을 물론 후배들까지 졸졸 따르며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한 사람은 현균보다 두 살 어린 성민이었다. 


“현균형, 어제 또 걸어갔지?”

“아니, 뛰어갔다. 왜?”

“뭐, 뛰어가?”

“그래 뛰어가니까 운동되고 좋더라.”


현균이는 한바탕 웃어버렸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그 날도 현균이와 성민은 점심을 먹기 위해 교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성민이가  밥값을 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성민이가 식권을 사려고 돈을 내미는 순간 어김없이 현균이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야, 됐다. 집어넣어.”

“형, 제발 나한테도 기회를 줘.” 

“기회는 무슨 기회? 꽝, 다음 기회를...”


현균은 농담까지 해가며 성민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성민이는 이에 지지 않고 식대 판매 창구 앞으로 돈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민이의 손을 툭 치며 현균이가 핀잔을 주었다.


“야, 성민아. 너 부모님 시골서 어렵게 농사일 하셔서 학비 보내주시는데 아껴야지.”

“아이 참, 형네 집은 넉넉한가?”

“야 임마, 나는 장학금 받잖아. 얼른 집어넣어.”


옥신각신 다투는 중에도 성민이가 계속 돈을 내려고 하자 현균이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김성민, 너 이 형한테 한번 혼나볼래?”


현균이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성민은 도리가 없었다. 성민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현균이가 사주는 밥을 그저 맛있게 먹는 것뿐이었다.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현균이를 생각하면 어떤 때는 화가 치밀었다. 성민이는 현균이가 세상을 좀 영악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큰 기대였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일 후 성민이는 현균이를 자신의 자취집으로 데려갔다. 독서실에서 새우잠 자는 현균이가 보기 안쓰러웠던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현균이를 따듯한 방에서 마음 편하게 재우고 싶었던 것이다.


“형, 오늘은 내가 예술 라면을 끓여주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래. 기대하마.”


버스에서 내리며 성민이가 말을 걸었다. 자취집 앞 골목에 다다르자 성민은 슈퍼마켓을 향해 뛰었다. 이번에도 또 현균이가 라면을 살 것 같아 선수를 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뒤에서 현균이가 성민이를 불러 세웠다.


“야, 성민아, 어디 가냐? 라면 사러 가냐?”

“아냐, 형.”


성민은 대충 얼버무리며 슈퍼를 향해 계속 뛰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균이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성민아, 라면 여기 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고 나서 성민이는 할말을 잃었다. 현균이가 가방 속에서 빨간 라면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웃고 있었다.


“아이고, 형, 라면은 또 언제 산거야?”

“하하하. 내가 또 이겼지? 성민아 너는 계란이나 한 개 사라.”


사실 현균이는 아까 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미리 사뒀다. 화장실 간다고 했을 때 좀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라면을 샀던 것이다. 이런 현균이의 배려에 성민이는 두 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은 흘러가고 어느 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현균이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형, 아들 낳았담며? 그래 이름은 뭐야?”

“응, 어진이다. 유어진. 이름은 내가 지었다. 하하하.”

현균이의 무조건적인 배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어진이”도 아빠처럼 무엇인가를 베풀며 “어질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성민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현균형이야.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10. 누렁아, 다시는 혼자 안보낼게


외양간의 누렁이는 창민이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았다. 창민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누렁이는 창민이네 외양간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민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친구가 돼 준 것도 다름 아닌 외양간의 암누렁이였다.


어려서부터 창민이는 누렁이 등에 훌쩍 올라타곤 했다. 황소는 거칠어서 등에 올라탈 수가 없었지만 암누렁이는 달랐다. 논이나 밭을 갈고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는 암누렁이는 언제나 온순했다. 논에서 돌아오는 길에 널찍한 누렁이의 등에 올라타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창민이에게 늘 핀잔을 주곤 했다.


“야 이놈아, 얼른 내려. 소 허리 다쳐.”

“아이구, 아버지는... 소 힘이 이렇게 센데 무슨 허리 다친다고 그래요?”

“아니, 이놈이... 누가 네 등에 타고 있으면 좋으냐?”

“....”


이럴 때마다 창민이는 누렁이 등에서 훌쩍 뛰어내려 녀석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쫓아가곤 했다. 덩치가 이렇게 큰데 허리가 다친다는 아버지 말씀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진 않았다.


그 날도 창민이는 뒷골 냇가 둑에서 누렁이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누렁이가 풀을 뜯는 동안 창민이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냇가 둑에 흐드러지게 익은 산딸기를 따먹는 일이었다. 새콤달콤한 맛에 취해 창민은 벌써 냇가 둑을 따라 꽤 멀리까지 내려갔다. 두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에구, 너무 늦었다. 서둘러야겠는걸.”


그러나 창민이가 누렁이가 있는 곳에 왔을 때 누렁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쇠말뚝이 뽑힌 자국만 선명할 뿐이었다. 창민은 씩 하고 웃었다. 산딸기를 한 입에 털어 넣고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걸음에 집에 달려온 창민은 외양간 뒷문으로 얼굴을 빠끔히 디밀었다.


“누렁아 안녕. 또 만났네 또 만났어. 야속한 누렁이.”


창민은 가수 주현미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누렁이를 불렀다.


“음매.”


누렁이는 창민을 보자마자 큰 눈을 끔벅거리며 길게 음매를 외쳤다. 창민은 누렁이 목줄에 걸려 있는 쇠말뚝에서 줄을 풀어 외양간 기둥에 다시 매어 주었다.


15년 동안 이 외양간에서 살면서 수 천 번 걸어 다닌 논길을 누렁이가 모를 리 없었다. 논에서 고삐를 풀어놓기만 하면 누렁이는 1km 남짓 떨어진 집까지 혼자서 돌아오곤 했다. 논에서 일이 늦게 끝나는 날 아버지는 으레 누렁이의 고삐를 풀어 주며 “이랴” 하고 소를 몰았다. 잠시 후 집에 오면 누렁이는 어김없이 외양간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소달구지를 매어 주며 뒷골 논둑에 가서 엊그제 베어놓은 꼴(소나 말에게 먹이는 풀)을 실어오라고 하셨다.


“야, 소나기 오겠다. 얼른 다녀와라. 말라서 무겁진 않을게다.”

“예, 아버지.”

“그리고 쑥 뜯어먹지 못하게 잘 봐라. 잘못 먹으면 큰일 난다.”

“예, 아버지. 다녀올게요.”


달구지를 다 매 주신 아버지는 곧장 깨밭으로 가 비료를 뿌리셨다.

창민이는 달구지 앞쪽에 타고 “이랴”를 외쳐댔다. 논에 도착한 창민은 베어놓은 꼴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싹 말라서 무겁진 않았지만 억새나 산딸기 줄기 때문에 얼굴이 베어지고, 찔리고 게다가 땀까지 솟았다. 상처난 부위가 자꾸만 쓰라렸다. 


30분만에 창민이는 꼴을 달구지에 모두 실었다. 그러나 창민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아버지 강요에 못이겨 깨밭 풀을 뽑아야 한다는 걸 창민이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꼴을 싣는 동안 창민이는 많이 지쳤고 스르르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했던 것이다.


“한 시간만 쉬었다 들어가야겠다.”


창민은 누렁이를 작은 아카시아 나무 기둥에 묶어놓고 바로 옆 미루나무 아래 풀밭에 벌렁 누워 버렸다. 먹구름 한 덩이가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소나기는 올 것 같지 않았다.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이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릴 즘 창민은 코를 골았다.


풀벌레 소리에 잠을 깼을 때 누렁이는 없었다. 잠자는 창민을 기다리다 못해 집으로 먼저 들어간 듯 했다. 창민은 집을 향해 달렸다. 누렁이와 달구지가 없기 때문에 큰길로 갈 필요 없이 좁은 지름길로 내달렸다. 아버지는 여전히 깨밭에 비료를 뿌리고 계셨다. 그런데 달구지를 달고 앞마당에 서 있어야 할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달구지 떼어놓고 외양간에 벌써 매어 놓았나 싶어 외양간에 들어가 보았다.


“누렁아, 나 왔다. 누렁아, 엇?”


그러나 누렁이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집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달구지도 누렁이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다리 건너 옆 동네로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겁이 덜컹 난 창민은 다시 논으로 뛰어갔다. 논에 다다랐을 즘 저쪽 밭머리에서 누군가가 창민을 불렀다.


“창민아, 창민아.”


동일이 아버지가 창민을 불러 세웠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헉헉.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헉헉.”


창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전부절 하지 못했다.


“야, 너네 소 저기...”

“네? 저희 누렁이가요?”


동일이 아버지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누렁이가 동일이네 집 뒤 대나무 숲길에서 여유 있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니, 누렁이가 왜 저기에...”

“달구지 한쪽 바퀴가 웅덩이에 빠지면서 누렁이가 중심을 잃고 같이 넘어졌단다.”

“...”

“넘어져서 발버둥치기에 내가 달구지 떼어내고 끌어다 매어 놓았지.”

“그랬군요.”

“그런데 창민이 너는 보이지도 않고... 좀 전에 집으로 달려가는 거 봤는데 부를 새도 없이 저쪽 샛길로 막 뛰어가더구나.”


논둑의 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으니 동일 아버지 눈에 창민이가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다행이다. 누렁이가 발버둥치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을 다 흘리더구나.”


누렁이에게 다가갔을 때 정말 누렁이 눈 밑으로 털이 젖었다 마른 흔적이 보였다.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창민은 누렁이가 자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누렁아. 다시는 너 혼자 안 보낼게.”


창민이가 누렁이의 목을 끌어안자 누렁이는 약속이나 한 듯 창민이의 머리를 쓱쓱 핥기 시작했다.



11. 십만원 월세방에서 나온 사연


태식이는 첫 직장부터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 한 달 동안 다녔던 회사가 도저히 월급을 줄 능력이 안 되자 태식이는 이성필 부장을 따라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이성필 부장을 비롯해 모두 다섯 명의 직원들이 집단으로 이직을 한 것이었다.


태식이가 새로 옮긴 회사는 전에 다녔던 직장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신문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도 재정상태가 그리 튼튼한 곳은 아니었다. 벌써 두 달째 급여가 미뤄지고 있었고 직원들의 성화에 사장은 급여를 지급할 것이라고 몇 번이나 약속 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이 때문에 태식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서울 큰누나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생활하고 있는 태식이는 일요일인 어제 조카들과 함께 용인 민속촌에 놀러 가 입장권을 끊으려다가 속만 상했다.


태식이의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누나이기에 식구들이 놀러갔을 때 누나가 늘 돈을 내곤 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이번엔 태식이가 용인 민속촌 입장권을 사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 2만원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명의 입장료는 모두 3만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태식이가 지갑을 폈다 접었다,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자 누나가 다가왔다.


“태식아, 됐어. 얼른 들어가자.”

“...”


누나가 이미 눈치를 채고 표를 사는 사이 태식이의 얼굴은 빨개지고 왠지 모를 설움에 눈물까지 났다. 민속촌 안에 들어가서도 태식은 내내 고개를 떨구며 끌려 다녔다. 조카들은 좋아하며 뛰어 놀았지만 태식이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아침 회사에서 태식이는 오전 내내 어제 민속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월급만 제대로 나왔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내심 사장을 원망하고 있던 터였다. 이성필 부장과 함께 애꿎은 담배만 자꾸 피워댔다.


“이 부장님, 오늘은 어때요? 나올 것 같습니까?”

“글쎄. 오늘은 우선 반만 준다고 토요일 날 김 전무님이 말씀하시긴 했는데...”

“아휴, 한두 번이라야 말이죠. 정말 속상해 죽겠어요.”

“야, 누군 안 그러냐? 오늘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해결해 주겠지.”

“오늘은 꼭 받아야 하는데...”


그러나 퇴근 무렵 김 전무는 직원들을 불러놓고 지사 계약이 안 돼 돈이 안 들어왔다며 또 급여를 미뤄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혹시나 했던 직원들은 역시나 하며 돌아섰다. 태식이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차라리 집에 안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는 태식이였다. 복잡한 심경 탓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태식은 어느새 누나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


“띵동 띵동.”


벨을 누르자 조카 영준이가 얼굴을 빼꼼이 내밀었다.


“누구세요? 아, 삼촌이네.”


문이 열리자 영준, 희준이와 사돈댁 딸인 미진이가 태식이 앞으로 모여들었다.


“삼촌, 삼촌, 피카츄하고 포켓몬스터 사왔어? “아, 뒤에 있구나. 얼른 줘.”

“...”


태식이는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게까지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식의 누나는 이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아이들에게 “얘들아, 삼촌 오셨으면 인사를 해야지. 뭘 달라고 그렇게 조르는 거야?” 라고 핀잔을 줬다. 방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태식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날 저녁 태식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건너갔다.


다음날. 직원들이 원성을 높이자 김 전무는 개인 돈을 찾아왔다며 차비 명목으로 5만원씩을 주었다. 5만원으로 일주일의 시간을 벌어 볼 셈이라는 걸 직원들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태식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퇴근할 때 조카들에게 줄 피카츄와 포켓몬스터 그리고 피자 한판을 사들고 갔다. 


다음날. 출근한 태식은 이성필 부장과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부장님, 열흘 있으면 설인데 정말 큰일이네요. 시골 부모님을 어찌 찾아봬야 할지?”

“그러게 말이야. 그때까지도 해결 안 되면 이대로는 못 있겠다. 법적으로 하던지...”

“법으로 한다고 곧장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은데요.”

“휴~”


이부장과 태식이는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태식이는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작년 11월 서울에 올라와 직장 생활하다 이번 설에 처음으로 내려가는 고향이었다. 절대로 빈손으로 고향에 내려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회사에서 급여가 안나온다고 말씀드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설 전날. 김 전무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봉투에 5만원씩 넣어 10명의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태식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부모님 내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드시고 싶어 하는 굵직한 오렌지가 너울너울 스쳐갔다. 또 조카들에게 줄 과자종합세트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잠시후 태식이의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울화통이 치밀어 그 자리에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5만원이 든 돈 봉투를 구겨 휴지통에 던지고는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현관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워댔다. 그때 이성필 부장이 뛰어 나왔다.


“야, 태식아. 너 그렇게 하고 나가면 어떡하냐? 너 그렇게 하면 내 얼굴은 뭐가 되냐?”

“죄송합니다, 부장님. 너무 속상해서 그만...”


태식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참고 또 참으며 소매로 계속 눈물을 훔쳤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그 때 이부장이 태식이 앞에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구깃구깃한 편지봉투 아래 네 개의 봉투가 더 얹어져 있었다. 태식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 부장에게 물었다.


“부장님, 이...이게 뭐예요?”

“태식아, 너 누나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것도 알고, 시골에 부모님 계신 것도 알어.”

“...”

“어차피 우리들은 집이 서울이라 시골 내려갈 일도 없고....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모았다. 자, 받아라.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부장님...”

태식이는 그 돈을 받는 다는게 너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명절인데 고향에안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태식은 고개를 푹 숙이며 돈을 받아들었다. 조금이나마 이성필 부장을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날 저녁 이성필 부장은 동대문 앞 골목에 자리 잡은 10만 원짜리 월세 여인숙에 들어가 짐을 꾸렸다. 눈을 맞으며 이불이며 옷가지며 모든 세간을 사무실로 옮겼다. 월세가 너무 많이 밀린 탓이었다.



12. 할머니, 붕어잡아 왔는데...


건강하던 민식이 할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황달병에 걸린 것이다. 할머니는 얼굴뿐만 아니라 어느덧 눈동자까지 노랗게 되었다.


민식이 아버지는 물론 형 민철과 동생 민호도 할머니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끔찍이도 손자들을 귀여워하셨기에 손자들은 할머니가 잘못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때 옆집에 살고 계신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께서 묘한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옆집 할머니께서 민간요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일종의 미신이었다.


“붕어하고 눈 마주치고 있으면 황달병이 붕어한테 옮아가.”

“할머니, 그게 정말이예요?”


민철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집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순간 민철이의 눈이 빛났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민철이에게 있어 옆집 할머니의 황달병 민간치료법은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민식아, 얼른 그물 챙겨. 민호는 외양간 가서 물 양동이 가져오고.” 

“알았어 형.”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민식과 민호는 붕어를 잡아오면 할머니의 황달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아프기 전 벙실벙실 웃으며 손자들을 다독거렸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3형제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3형제는 칼바람을 맞으며 냇가로 향했다. 상짓말 냇가 물은 군데군데 얼어 있었다. 먼저 큰형인 민철이가 양말을 벗고 냇가에 발을 담갔다. 곧이어 동생 민식이도 형의 뒤를 따랐다.


“아야, 차가워. 형, 발 너무 시려워.”

“조금만 참아. 큰놈으로 대여섯 마리만 잡자. 민호 너는 물에 들어오지 마. 냇가 둑 따라서 형들 쫓아와. 양동이 물에 떨어뜨리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형.”


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달리 물고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넓은 냇가의 붕어들은 3형제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매번 빈 그물만 들어 올렸다. 첨벙첨벙 물이 옷에 튈 때마다 추위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형. 어떡하지?”

“...”


민식이의 물음에 민철이도 대답을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막내 민호는 벌써 지쳤는지 양동이를 힘없이 땅에 끌고 다녔다. 물고기 한 마리 담지 못한 양동이였다.


한 시간을 그렇게 헤매고 다녔을까. 민철이는 단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집에서 붕어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바로 그 순간 3형제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아시스 모양의 물웅덩이에 뼘치보다 더 큰 붕어 수십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냇가 폭이 넓다보니 위에서 떠내려 온 모래와 흙이 쌓여 냇가 한가운데 물웅덩이를 만든 것이었다. 삼형제는 붕어를 양동이에 주워 담았다. 그물질 한번으로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형, 이 정도면 할머니 병 나을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얼른 가자.”


삼형제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길을 재촉했다. 2월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희망의 불로 타오르는 형제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힐 수는 없었다. 집에 다다랐을 즘 동생 민식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아야.”


순간 민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검정 고무신 한쪽은 뒤에 떨어져 있었다.


“민식아, 왜 그래? 어디 다쳤니?”

“아냐 형, 돌부리에 걸렸어. 얼른 가자. 할머니 많이 기다리시겠다.”

“그래, 정말 괜찮지?”


민식이는 절뚝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한 형제들은 서둘러 놋대야를 방안으로 들고 와 붕어들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누워 계신 골방으로 가져갔다.


“할머니, 할머니, 여기좀 봐. 붕어 잡아왔어. 얼른 일어나 봐.”


막내 민호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날씨 추운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할머니는 놋대야의 붕어들을 보시며 손자들의 기특한 행동에 감탄했다. 손자들은 또한 기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이어 할머니와 붕어들과의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생사를 건 눈싸움이었다. 이제 황달병이 붕어에게로 옮아가는 일만 남았다.


민철이가 골방에서 나오자 민식이가 발에 빨간 약을 바르면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


“너 어떻게 된 거니? 돌에 걸렸다며?”

“응, 별거 아냐. 아까는 아픈 줄도 몰랐어.”


민식이는 돌부리에 걸린 게 아니라 사실 유리조각에 찔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빨리 붕어를 할머니께 갖다 드려야한다는 생각에 다쳤다는 사실을 감춘 것이었다. 형한테는 그냥 돌부리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식이는 할머니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자신의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어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할머니의 황달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결국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했다. 민철이와 동생들은 할머니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손자들이 학교에 간 사이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었다.


입원한 지 닷새 만에 이장님 댁 전화로 연락이 왔다. 할머니께서 먼 길을 떠난 것이었다.  이튿날 손자들은 누런 삼베에 싸인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헤어질 때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한 할머니였는데 이런 모습으로 오시다니. 3형제는 할머니의 영정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의 장례가 끝나자 식구들은 할머니가 쓰던 물건들을 태우기 위해 골방의 장롱을 열었다. 까만 비닐봉지에서 말랑말랑한 연양갱과 카스텔라 빵이 나왔다. 두 달 전 민철이가 할머니께 사다 드린 것인데 시간이 꽤 지난 탓에 곰팡이도 군데군데 슬어 있었다. 이가 없어 말랑말랑한 것으로 사다드렸는데 아껴 뒀다가 손자들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손자들은 목이 메었다.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골방 한구석에서 일어나 손자들을 부를 것만 같았다.


“형 붕어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 효험이 없었던 것 같아.”

“아냐, 우리가 붕어 잡아왔을 때 할머니 표정 봤니?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표정이셨어.”

“그래서?”

“붕어 때문에 기뻐하셨던 할머니의 표정, 그게 바로 효험이었던 거야. 내 기억 속엔 할머니의 그 행복한 모습만 보여.”

“형.”


민철과 민식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13.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내


병수 어머니는 요즘 화투에 푹 빠져 있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마을회관에서 늦게까지 화투를 치곤했다. 마을 회관에서 돌아와서도 병수 어머니는 화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올해 65세인 병수 어머니는 화투를 치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둘째딸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화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꼬박 1년을 넘기고서야 화투 치는 요령을 간신히 터득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어깨 너머로 간신히 한글만 깨우친 병수 어머니한테 넉 장의 비슷한 그림을 찾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특히 점수 따지는 일은 곤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도 병수 어머니는 마을회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해서 5점이 되는 겨?”

“청단 3점하고 피가 열 한 장이니까 2점. 합이 5점.”

“저거 붉은 띠 있는 거 석장은 홍단 아닌감?”

“홍단은 2장뿐이구먼. 한 장은 초단이여 병수 엄마.”

“그래도 붉은 띠가 석장이면 1점 줘야 하는 거 아닌감?”

“아이구, 병수 엄마, 띠 다섯 장부터 1점 주는 거야. 여태껏 뭐 봤대 그래.”

“...”


병수 어머니는 젊은 아주머니들의 면박에 움찔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에는 치매예방 때문에 화투를 배웠지만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었다. 언젠가는 젊은 동네 아주머니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떤 수모를 당하더라도 꼭 참고 1년 동안 끈질기게 배워온 것이었다.


물론 집에 병수 아버지가 계시긴 했지만 장난이라도 절대 화투장을 잡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병수 어머니는 늘 혼자서 화투를 해야 했다. 혼자 패를 돌리고 1인 3역을 해가며 화투를 했지만 병수 어머니는 즐겁기만 했다. 병수 아버지는 이런 아내를 보며 겉으론 혀를 찼지만 속으론 뿌듯해했다. 느지막하게나마 지루한 일상에서 취미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만좀 하지. 잠자게 불 좀 꺼.”

“좀 배우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라요? 상대해주지도 않으면서...”

“아이구, 할매야. 거 졸리지도 않아?”

“정히 졸리면 저 쪽방 가서 먼저 주무시구랴. 나는 더 있다 잘 테니.”

“정말 못 말리는 할매야.”


사실 병수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흥이 나 있었다. 모레가 병수 어머니 생신인데 도회지에 있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모두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눈치 볼 것 없이 자식들과 화투를 실컷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병수 어머니는 벌써부터 설레고 있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밤 늦게까지 혼자 화투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신 전날 안산에서 내려온 둘째딸이 물었다.


“엄마, 화투가 그렇게 좋아? 우리 엄마 화투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것아, 잔소리 그만하고 담요나 깔어.”

“알았어. 엄마 오늘은 딱 열 번만 돌리는 거야?”

“잔소리 그만하고 담요나 깔라니까.”


병수 어머니는 마음이 급했는지 담요가 깔리기도 전에 방바닥에 패를 늘어놓았다. 두시간쯤 지났을까. 화투는 벌써 스무 판을 넘고 있었다. 딸들은 일찌감치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그러잖아도 낮 동안 생신상 음식 차리고 부엌일 하느라 피곤에 지친 딸, 며느리들이었다. 


어느덧 큰며느리도 슬그머니 들어가 버렸다. 남은 건 막내며느리인 병수 아내뿐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병수 어머니는 화투를 그만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며느리인 병수 아내가 먼저 그만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 ‘딱 딱’ 소리에 잠이 깬 병수는 그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화투판을 벌이고 있는 아내가 안타까웠다. 병수는 한 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화장실에 숨어 아내한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내는 화장실에 가야한다고 어머니께 말하고 병수가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어머니께 말씀 드려줄까?”

“아냐, 신경 쓰지마. 얼른 들어가서 자.”

“내일은 김치도 담가야 하고 모레는 출근도 해야 할 텐데 피곤하지 않아?”

“나야 오늘밤만 피곤하면 되지만 어머니는 내일부터 계속 심심해하실 거잖아. 그거 생각하면 오늘 밤새 해도 부족해.”

“....”

“그리고 나 피곤한 거 어머니 다 아시면서도 아무말씀 못하시잖아. 그 마음 헤아려봤어?”

“...”


병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말을 이었다.


“잠시 동안의 내 고통이 어머니께 커다란 기쁨이 된다는 거 생각하면 나도 기뻐.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


병수는 아내를 향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자식인 병수보다 며느리인 아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속 깊게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14. 돌아온 누런둥이


1년 전, 토종 진돗개 종류인 누런둥이는 시골 영미 할머니네 집에서 무녀리(맨 먼저 태어나 몸집이 유난히 작고 허약함)로 태어났다. 어미는 누런둥이를 비롯해 4마리의 새끼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새끼들에게 어미 젖 대신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를 먹였다. 그러나 누런둥이는 몸집이 작은 무녀리라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에 사는 영미가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누런둥이를 서울로 데려오게 되었다.


“아이고 녀석, 누릇누릇한 게 정말 귀엽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누런둥이야. 알았지?”


태어나자마자 불가피하게 어미에게 버림받은 누런둥이는 상냥한 영미의 말에 안심을 하는 듯 보였다. 서울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누런둥이도, 영미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상경한 누런둥이는 아파트에서 어려움 없이 지냈다.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 따위를 먹을 필요도 없었다. 기름진 음식에, 또 영미가 워낙 잘 돌봐주는 탓에 누런둥이의 몸은 튼튼해졌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누런둥이의 몸이 그렇게까지 불어날 줄 영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3개월 만에 누런둥이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그러자 식구들이 누런둥이를 꺼리기 시작했다. 안아주기는커녕 누런둥이가 다가서려고 하면 밀쳐내기 일쑤였다.


“누런둥아, 어떡하니? 너 이제 어디로 가니? 흑흑.”

“...”


영미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누런둥이는 가련하게 내려다보는 영미를 향해 낑낑거리기만 했다.  영미도 누런둥이를 어딘가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누런둥이가 아파트에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영미는 누런둥이를 신정동 회사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출입문 왼쪽에 묶어 두었다.


“누런둥아,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 여기는 넓어서 네가 사는데 아무 문제없을 거야.”


영미는 누런둥이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누런둥이는 또다시 버려진다는 사실을 눈치 챘는지 한동안 물끄러미 영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런둥이는 이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누런둥이 눈에 비친 건물 옥상은 굉장히 넓었지만 아파트에서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줄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런둥이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영미님, 저 뛰어다니고 싶어요.”


낑낑거리는 누런둥이를 향해 영미는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런둥아,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사람들이 널 무서워한단 말야‘”


누런둥이의 옥상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건물 옥상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만든 식당이 하나 있었다. 가방을 봉제하는 이 회사는 회사 근처에 마땅히 식사할 데가 없어 옥상에 직원 식당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누런둥이는 굶지 않고 옥상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누런둥이에 대한 영미의 관심은 점차 식어갔다. 처음에 귀여운 모습을 보고 데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영미의 직장 동료인 은실이가 누런둥이의 밥을 끼니때마다 챙겨주었다.


“아이고 가엾은 누런둥이.”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누런둥이는 은실이를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은실이도 언젠가는 영미처럼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누런둥이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은실은 진심으로 누런둥이를 대했다. 추운 날엔 엄마 몰래 내복을 꺼내와 누런둥이에게 입혀주기까지 했다. 소매를 조금 자르고 머리 들어가는 구멍을 넓혀 누런둥이의 몸에 맞게 옷을 만들었다. 은실이는 옷이 벗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옷핀을 끼우는 등 세심한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러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누런둥이의 옥상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이 회사 남자 직원들이 누런둥이를 이유 없이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괴롭혔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남자 직원들은 발길질을 하거나 막대기를 이용해 누런둥이를 때렸다. 또 어떨 때는 누런둥이를 골대처럼 생각하고 축구공을 날리기도 했다. 이럴수록 누런둥이는 그 사람들을 향해 더욱 더 큰소리로 짖어댔다.


“멍멍멍! 멍멍 멍 멍 멍.”

“이놈의 개가 미쳤나?”

“멍멍멍! 으르렁 멍!”


누런둥이는 으르렁대며 남자 직원들을 경계했다.


“야, 저거 짖는 것 좀봐. 너 한번 맞아 볼래?”

“깨갱 깨갱”

“한번만 더 대들면 그땐 정말 각오해.”


가방 끈으로 사용하는 인조가죽에 매질을 당한 누런둥이는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1미터도 안 되는 줄에 매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한탄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누런둥이와 남자 직원들 간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직원들만 보면 누런둥이는 으르렁댔고, 그럴수록 직원들은 더 심하게 괴롭혔다. 게다가 더욱더 커 가는 몸집과 무섭게 생긴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누런둥이를 피하게 만들었다. 외모 때문에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은실이 만큼은 누런둥이를 아껴주었다. 집에 있는 애완견 강돌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런둥이의 성격은 사나워져 갔지만 유독 은실이 한테 만큼은 꼬리를 흔들며 착하게 굴었다.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커져가는 만큼 은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은실이는 누런둥이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옥상에 두었다가는 누런둥이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은실이는 그동안 누런둥이와 정이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러나 은실네 집에 와서도 누런둥이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강돌이와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덩치 큰 누런둥이만 혼나기 일쑤였다. 은실이는 누런둥이의 아픔을 알고 있었지만 은실이 아버지는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강돌이만 귀여워했다. 오늘 아침에도 둘이 싸우다가 은실 아버지한테 누런둥이만 혼났고 이 때문에 또다시 강돌이와 다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밥 줄 때만 제외하고는 누런둥이와 강돌이는 사이좋게 지냈다. 누런둥이를 바라보는 은실이 아버지의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은실이 엄마가 누런둥이를 싫어했다. 앞마당에 묶어 놓은 누런둥이 때문에 털이 날려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은실이 아버지와 엄마는 누런둥이 문제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결론은 은실이 몰래 누런둥이를 팔기로 했다. 대신, 은실이한테는 누런둥이의 목사리에 풀려 도망갔다거나 누가 훔쳐간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 저녁 퇴근해 들어온 은실은 깜짝 놀랐다. 꼬리를 흔들며 벙실벙실 웃고 있어야 할 누런둥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 아빠, 누런둥이 어딨어요?”


은실이는 숨이 넘어가는 듯한 급한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나도 들어와보니까 누런둥이 목사리가 풀어져있고, 없어졌더구나. 도망간 건지 누가 끌고 갔는지... 나 원 참. 세상에 별일이...”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며 혀를 찼다. 옆에 있던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 아침에 나갈 때 대문을 제대로 안 닫고 나간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인데 설마 누가 끌고 갔으려구요?”


은실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작정 누런둥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문이 열리는 바람에 누런둥이는 넓은 세상을 향해 잠시 바람 쐬러 간 것이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은실이는 믿었다. 불길한 생각은 아예 하기도 싫었다.


그날 밤 늦게 누런둥이는 정말 돌아왔다. 한 밤중 대문을 닥닥 긁는 소리에 깬 식구들은 누런둥이의 모습에 놀랐다. 머리와 입은 피투성이에다 다리도 여기저기 찢긴 모습으로 누런둥이는 절뚝거리며 은실네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개를 가두는 철망의 벌어진 틈 사이를 머리로 벌리고 입으로 물어뜯고, 다리가 걸려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탈출했던 것이었다.


누런둥이를 부둥켜안고 우는 은실이를 보면서 은실이 부모님은 후회했다.


“은실아, 누런둥이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잘 보살피자꾸나.” 


부모님은 그제야 비로소 누런둥이를 가족으로 받아들기로 했던 것이다.




15. 엄마 죄송해요

 

초등학교 3학년인 광민이는 학교가 파한 후 논에서 부모님과 함께 벼를 베고 있었다. 오전에 학교에서 수복이, 기철이와 함께 소탐산으로 상수리를 주우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광민이는 부모님께 꼼짝없이 붙들려 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논머리 큰길가에 수복이와 기철이가 쌀포대를 메고 소탐산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 녀석은 광민을 향해 펄쩍 펄쩍 뛰면서 손짓을 하다가 쌀포대를 빙빙 돌려보기도 했지만 광민이는 낫질을 계속 해야만 했다. 두 친구들이 그럴수록 한 발짝도 꿈쩍 못하는 광민이는 속만 새카맣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광민아, 뭐하냐? 또 논에 있냐? 야, 상수리 털러 가야지?"


멀리서 수복이와 기철이가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같이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눈물까지 났다. 용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야 한다는 생각에 광민이는 절망에 빠졌다. 1킬로에 3백원이나 하는 상수리를 셋이서 주우면 50킬로는 거뜬한데 이렇게 매여 있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때 광민이는 꾀를 생각해냈다. 다리에 살짝 상처를 내고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가 있는 척 하다가 몰래 수복이와 기철이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험하게 자라온 광민에게 있어 그깟 상처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마음을 굳게 다진 광민이는 벼 포기 앞으로 다리를 바짝 대고 눈을 감은 채 낫으로 살짝 그었다.


“아야.”


뜨끈한 피가 주루룩 흘렀다. 옆에서 벼를 베던 엄마가 기겁을 하며 달려왔다.


“광민아, 왜그러니? 낫으로 베었냐?”

“아, 아파, 아야.”


광민이는 엄살을 떨었다. 엄마는 상처 난 곳의 피를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광민이는 너무 죄송했지만 친구들과 상수리를 주우러 가고싶은 마음이 앞서 있었다.


“아이구, 쇳독 오르면 안 되는데, 광민아 잠깐만 여기 누워 있어.”


엄마는 둑에 가서 쑥을 한 움큼 뜯어왔다. 낫 머리를 이용해 넙적 돌에 쑥을 올려놓고 찧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상처에 철썩 붙였다. 그러나 샘물처럼 솟는 피는 멎지 않았다. 그때 논머리에 있던 아버지가 달려왔다.


“야, 어쩌다 그랬냐? 집에 가서 아주까리기름 바르면 금방 멎어. 얼른 가.”


순간 광민이는 귀가 번쩍 띄었다. 추석 연휴에도 논에 붙잡아 놓는 아버지께서 집에 가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광민이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광민이는 집 쪽을 향해 돌아서면서 다리를 크게 저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아야.”를 연발했다.


“광민아, 안되겠다. 걸어가다가 상처 난데 피 몰리면 안 돼. 엄마한테 업혀라.”

“괜찮은데...”


광민이는 마지못해 엄마 등에 업혔다. 등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너무나 포근했다. 엄마의 냄새가 좋긴 했지만 너무 미안했다. 지난여름에 외양간에서 소똥을 치우던 엄마가 황소 뒷발에 채인 이후 몸이 좋지 않다는 걸 광민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말로는 갈비뼈에 약간 금이 가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바쁜 농촌일 때문에 변변한 치료한번 받지 못한 터였다.


명철이네 집 앞마당을 지나자 외양간에 가려 논에 계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광민이는 양심 때문에 더 이상 엄마 등에 업혀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 이제 내려 줘. 나 혼자 걸어갈 수 있어.”

“그래. 들어가서 약 발라. 부엌 두 번째 선반 위에 사과 있으니까 배고프면 꺼내먹고.”


엄마가 돌아서서 명철이네 외양간을 지나가자 광민이는 검정 고무신을 벗어들고 집을 향해 뛰었다. 마음 한켠이 찜찜하면서도 상수리를 주우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기뻤다. 상처의 쓰라림은 느껴지지도 않았고, 사실 안중에도 없었다.


“야호, 이젠 자유다.”


집에 들어온 광민이는 아주까리기름을 바르고 헌 메리야스를 찢어 상처 난 다리를 동여매었다. 부엌 두 번째 선반 위에서 사과를 한 개 집어 옷에 쓱 문지르고는 덥석 베어 물었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사과를 먹고 난 광민이는 쌀포대를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엄마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꽤 멀리 돌아 소탐산쪽으로 향했다. 참나무가 많이 모여 있는 산 중턱 평지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수복아, 기철아 어디 있냐?”

“수복아 아, 기철아 아 어디 있냐 아아아.”


그러나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참나무 밑에는 상수리 껍질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와, 녀석들 벌써 상수리 다 털고 갔네.”


한 발 늦은 것 같았다. 광민이는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너털너털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광민이는 산길에 떨어진 알밤을 몇 개 주웠다. 욕심이 난 광민이는 돌을 던져 밤 몇 알을 더 땄다. 상수리 대신 쌀포대에 밤이라도 주워 담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고개를 내려오니 뒷골 논에서 벼 베는 부모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허리를 구부리고 낫질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논둑에 두 다리를 펴고 앉아 주먹으로 무릎을 톡톡 치고 있었다. 서서 낫질을 하다보니 관절염이 도진 모양이었다.


광민이는 고민에 빠졌다. 멀리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다시 논으로 가야할지 선뜻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일이 떠올랐다. 쇳독을 없애야 한다며 입으로 생채기를 빨아내던 엄마, 엎어주면서 찬장에 사과 꺼내먹으라고 말씀하시던 엄마. 또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하시는 아버지 모습도 떠올랐다.


광민이는 몇 알 안 되는 밤이 담긴 쌀포대를 빙빙 돌리며 순식간에 엄마한테로 달려갔다.


“야, 광민아. 너 다리는 어쩌고 논에 왔냐?”

“응, 아주까리기름 발랐더니 금방 낫네. 헤헤. 엄마 내가 밤 주워왔다. 먹어볼래?”

“녀석도 참...”


광민이는 엄마의 낫을 얼른 뺏어들고 밤 속껍데기를 벗겼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밤은 술술 잘도 까졌다. 광민이는 뽀얗게 벗겨낸 밤알에 군데군데 묻어있는 속껍질을 바지에 대고 쓱쓱 대충 털어 내고는 엄마 입속에 넣었다.


“오도독~ 오도독~ 야, 밤 참 잘 영글었다.”


엄마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광민이도 알밤을 먹고 싶은 마음에 침이 넘어갔지만 참았다. 엄마가 한 알을 다 드시기 전에 또 한 알을 까야만 했다. 알밤을 드시는 동안, 잠깐만이라도 엄마를 쉬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잘못된 행동 그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가 뉘엿뉘엿하면서 서쪽에 노을이 깔리기 시작했다. 소슬바람이 살랑이면서 황금 들판을 더욱 더 진한 황갈색으로 덮었다.




16. 식어버린 떡볶이


“명희야, 오늘 시험 끝나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너무 늦지 마.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았어. 전화할게. 우산이나 꺼내 줘.”

“내일 첫출근이야. 명심해.”

“알았다니까. 최대한 빨리 들어올게.”


일요일 오전 영희는 외출하는 동생 명희에게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당부했다. 성남 영희네 집에 살면서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동생 명희는 일요일인 오늘 기말시험을 치르기로 돼 있었다. 일주일전에 새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된 명희는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출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언니 영희가 명희에게 당부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워낙 완고한 성격의 친정아버지 때문에 명희를 언니가 데리고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어두워지면 명희가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늘 강조할 만큼 엄격한 분이라 직장이나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따랐다.


“여보, 11시 넘었는데 처제 왜 안 들어오지? 전화 한번 해봐.”

“그러게요. 일찍 들어오라고 그만큼 일렀는데...”


영희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안전부절 못했다. 영희는 명희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응, 언니. 거의 끝나는 분위기야. 한 시간 내에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정말. 막차 끊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지금 비도 오잖아.”

“알았어. 미안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영희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영희네 집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한참 걸어 들어와야 하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낮에도 사람과 마주치면 섬뜩할 정도로 무시한 골목이라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새벽 1시가 되었지만 명희는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명희를 방해하기 싫어서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인데, 영희는 순간 화가 났다.


“야, 지지배야, 뭐야?. 지금 몇 시인데 전화도 없이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영희는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언니, 여기 미사리 근처인데 차가 빠져서 지금 꼼짝도 못하고 있어.”


다급한 명희의 목소리 속에는 빗소리와 심한 자동차 엔진소음이 섞여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이 시간에 왜 미사리에 있어? 차는 왜 빠져? 음주 운전했니? 지금 누구하고 있는 거야?”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데 그게...”

“몰라, 이것아. 어떻게 출근 하려고 그래? 니 알아서 해.”


영희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속이 너무 상해 눈물까지 날 정도였다.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에 미사리까지 놀러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영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명희가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날 영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명희는 아침 7시가 돼서야 들어왔다. 비에 흠뻑 젖었고 게다가 흙탕물까지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이런 명희의 모습을 보자마자 영희는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야, 이 지지배야. 너 정말 왜 그러니? 밤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어? 너 이럴 거면 차라리 집으로 가버려. 정말 속상해서 같이 못 있겠다.”

“미안해 언니...”


명희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난 영희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명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이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영희는 명희를 붙들고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명희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흙탕물 범벅이 되어 현관 밖에 서있던 명희 친구들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명희는 친구들이 얼굴에 묻은 흙이라도 씻고 갔으면 했지만 들어오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명희는 그동안 마음 터놓고 지낸 언니한테 심한 꾸중을 들은 것이 너무나 속상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또 친구들을 그렇게 보내야 했던 안타까움도 더해져 눈물이 났다. 영희도 동생이 속상해하며 우는 모습에 마음이 상해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영희는 많이 누그러진 어투로 명희에게 말을 건넸다.


“명희야, 얼른 씻고 출근 준비해. 너 그래가지고 출근할 수 있겠니?”


영희의 마음이 어느정도는 풀어져 있었다. 조금 전에 명희한테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희는 명희의 젖은 물건을 말리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그때 검은 비닐봉지 속의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떡볶이였다. 순간 영희는 울컥했다. 떡볶이는 영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늘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다. 명희가 술자리를 파하고 나오면서 언니 주려고 사서 가방 속에 넣어둔 것이었다.


그날 일찍 퇴근한 영희는 명희의 흙투성이 신발을 빨았다. 아침에 너무 모질게 했다는 생각 때문에 하루 종일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명희는 그날 밤 심한 감기몸살에 열병을 앓았다. 영희는 옆에서 명희를 다독였다.


“명희야, 다음에 그 친구들 집으로 데려와. 그땐 잘 해 줄게. 니 마음 다 알어.”

“...”


명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베개에 눈물만 떨궜다. 


이틀 후 영희는 그 날 밤일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술자리를 끝낸 후 친구의 차를 타고 나오던 명희는 길 맞은편에 있는 떡볶이 가게를 보고 차머리를 돌렸다. 언니 영희한테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떡볶이를 사고 유턴을 하기 위해 도로를 따라 갔지만 유턴할 곳은 없었고 성남, 구리 방면의 이정표를 보고 친구는 그대로 달렸다. 그러나 초행길인 그 친구는 성남으로 나가는 길을 이미 지나쳐 버렸고 결국 미사리 근처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게 헤매던 중 이들은 밤길을 혼자 가는 한 할아버지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오다 비에 젖은 좁은 논길에 한쪽 바퀴가 빠졌다. 그 시간에는 견인차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길가에 빠진 차와 씨름하다 날이 샜고 아침이 돼서야 견인차의 도움을 받아 성남 집까지 올 수 있었다. 



17. 목이 메여 초코파이가 안 넘어가


아홉 살인 용태는 큰 걱정이 하나 있었다. 일주일만 있으면 대학교 진학을 위해 큰누나가 서울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4남 2녀중 다섯째인 용태는 큰누나와 열 살 차이가 났다. 특히 용태와 막내는 큰누나가 거의 키우다시피 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정이 많이들은 터였다. 농촌 일에 바쁜 엄마 대신 큰누나가 밥을 주로 해 먹였을 뿐 아니라 도시락, 목욕, 공부까지 가르쳐 주었다. 결국 용태한테 있어 큰누나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누나, 서울 가면 편지 할 거지?”

“그럼. 편지 자주 할게.”

“누나, 서울 가면 남산타워 어떻게 생겼는지 편지로 꼭 알려줘.”

“알았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누나가 동화책도 보내 줄 테니까 열심히 읽어.”

“헤헤, 알았어.”


용태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누나를 통해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서울에 다녀 온 친구에게서 말로만 들었던 남산타워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용태의 가슴 한켠엔 기쁨보다는 누나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슬픔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드디어 누나가 서울 올라가던 날 용태는 읍내로 가는 십리 길을 배웅해 주었다. 외발 손수레에 짐을 싣고 터벅터벅 산길을 걸었다. 자꾸 누나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용태의 속마음은 서울행 직행버스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태의 그러한 바람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용태야, 엄마,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아프지 마.”

“...,”

“용태야, 이거 받아. 가다가 7거리 슈퍼에서 초코파이 사 먹어.”

“....”


큰누나는 용태에게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쥐어 주고는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용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시울을 적신 채 고개를 떨궜다. 고개를 들었을 때 버스 안에서 손 흔드는 누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너울거리는 눈물 때문이었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누나를 되뇌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금방이라도 저쪽에서 “용태야”하며 누나가 뛰어올 것만 같았다. 터벅터벅 걸어오다가 7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초코파이 두 개와 요구르트 한 개를 샀다. 초코파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용태야, 가다가 7거리 슈퍼에서 초코파이 사 먹어.”


한 입 한 입 베어 물때마다 누나가 했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순간 목이 꽉 메었다. 요구르트를 벌컥 들이켰지만 시원스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레가 들려 초코파이와 요구르트가 범벅이 되어 기침과 함께 코로 흘러나왔다. 용태는 태어나서 목이 멘다는 것을 그 날 처음 깨달았다.


집에 돌아온 용태는 뒷산에 올라가 멍하니 나무만 바라보았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베개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축축했다. 그 동안 큰누나와 함께 했던 추억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용태는 시름 속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따르르르릉.”


집배원 아저씨의 자전거 방울소리가 들렸다. 사실 용태는 누나가 서울에 올라간 다음날부터 집배원 아저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저씨는 야속하게 농민신문만 꽂아놓고는 언덕을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누나의 편지가 드디어 도착했다.


“고맙습니다. 집배원 아저씨.”


용태는 평소 안 하던 인사를 꾸벅 했다. 누나는 용태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 안에는 부모님 전상서와 함께 용태한테만 따로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물론 다른 동생들의 안부도 물었지만 주로 용태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용태야 잘 지내지? 형, 작은 누나 말 잘 듣고 있지. 누나도 고모 댁에서 잘 지내고 있단다. 사촌 오빠, 언니들도 잘해주고. 다음 편지엔 남산타워에서 찍은 사진하고 동화책이랑 같이 소포로 보내줄게.”


용태는 그 날 열 번 넘게 큰누나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는 그 날 저녁 답장을 썼다. 작년부터 가지고 있던 노란 은행잎도 편지지속에 끼워 넣었다. 누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편지였다.


보름이 지났다.


“따르르릉, 소포요. 얘야, 가서 아무 도장이나 가지고 오너라.”

“네.”


집배원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태는 안방으로 뛰어가 아버지 도장을 들고 나왔다. 큰누나가 보낸 소포였다. 안데르센 동화집과 탈무드 이야기였다. 안데르센 동화책 속에는 남산 도서관 앞에서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찍은 누나의 사진도 보였다. 미술 책에서 보았던 남산타워와 정말 똑같았다.


“이야. 정말 남산타워네.


용태의 감탄은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동화책은 빛이 바래져갔다. 누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갓 스무 살 처녀는 이제 마흔이 되었고 아홉 살 용태도 서른을 바라보게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큰누나는 명절 때 두어 번 고향을 찾았다. 결혼 후에는 그나마 발걸음도 뜸해졌다. 부모님 생신 때 찾아뵙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용태가 특별히 서울에 올라갈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용태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큰누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어느 날 큰누나와 용태가 마주 앉아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용태야, 너 그때 생각나니? 20년도 더 넘었겠다.”

“그럼, 생각 안 날 리가 있나? 누나가 맨날 부침개 해주고 도시락 싸 주고...”


용태는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누나가 뜻밖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용태야, 누나 서울 올라오던 날 7거리 슈퍼에서 초코파이 사먹었니?”

“하하하. 사먹었지. 그 날 어찌나 목이 메던지... 하하하.”


용태는 그때의 상황이 창피했는지 끝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 당시엔 그렇게 슬펐던 기억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용태야, 이거 한번 봐. 생각나지?”


누나가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를 용태 앞으로 내밀었다. 뚜껑을 연 용태는 놀라 쓰러질 뻔 했다. 빛바랜 편지 묶음. 그것은 20년 전 용태가 누나한테 보낸 편지였다. 용태는 떨리는 손으로 맨 위에 놓여 있는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비닐로 코팅된 은행잎이 용태 앞으로 떨어졌다.


“아, 이...이건...”


용태는 20년 전 자신이 보낸 편지를 눈으로 읽었다.


“누나, 오늘 편지 잘 받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 날 버스 타고 가고 나서 누나가 준 돈으로 초코파이 사 먹었어. 목 메여서 죽는 줄 알았어. 집에 가서도 누나 생각나서 계속 눈물만 났어.”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 날 용태의 편지. 20년 동안 거의 잊혀졌던 추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용태는 이어 두 번째 편지를 꺼내들었다.


“누나, 안데르센 동화집하고 탈무드 다 읽었어. 학교에 독후감 써냈는데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셨어. 누나가 사준 동화책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용태한테는 정말 좋은 누나가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어.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착하게 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용태는 20년 전 자신이 쓴 편지들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 당시 어린 마음을 지금 떠올리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용태야. 누나가 이 편지 보여준 건 앞으로도 아홉 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야. 그때 누나가 안데르센 동화책하고 탈무드 보내준 것도 동화 속에 사는 사람들처럼 착하게 살아가라고 한 거야.”


 

 

18. 시골로 간 오리 두 마리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한 쌍에 삼천 원.”

“아뇨, 두 마리 말고 한 마리 말예요?”

"한 마리는 안 팔아요.”

“예? 왜 안 판다는 말씀이예요?”

“오리는 혼자서는 못살아요. 반드시 암수 한 쌍이 같이 다녀야 살 수 있어요.”

“그래요? 저는 처음 듣는 얘긴데....”


진철이는 아주머니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 암 수 한 쌍의 오리를 샀다. 두 마리라고 해도 삼천 원 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철은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몸집은 어찌나 작은지 진철이의 눈에는 오리 두 마리가 가냘파 보이기까지 했다. )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에서 산 오리를 누나네 아파트까지 들고 오는 동안 진철이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오리가 낳은 알을 프라이 해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은 아파트 현관 앞에서부터 깨지는 듯 했다.


“어이, 그거 뭐예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진철이를 불러 세웠다.


“예, 오리 두 마리인데요.”

“지금 갖고 들어가려는 거예요?”

“예,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오리 털 빠지고 똥 싸고 그러면 주민들이 뭐라고 할 텐데.”

“아저씨는 참, 그럼 개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길러요?”

“개하고 오리하고는 틀리죠. 여하튼 주민들 불만 안나오게 조심해 주세요.”


진철이는 오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비아저씨 때문에 좀 언짢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키우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누나 앞에 새끼 오리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조카들도 오리가 신기한지 뒤따라 다니며 흉내를 냈다. 누나도 오리가 너무 귀엽다며 어떻게 오리를 사올 생각을 다했냐며 좋아했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누나는 조심스럽게 진철이에게 말했다.


“진철아, 그런데 너 오리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니?”

“라면상자에 넣어서 베란다에 놓으면 될 것 같은데. 먹고 남은 밥 주면 문제없을 테고.”

“얘, 상자에 넣고 밥만 주면 알아서 크는 줄 아니? 에고고, 나는 모르겠다.”

“...”


다음날 진철이가 출근하고 난 뒤 누나는 한동안 오리를 쳐다보았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누나도 동생 진철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제 ‘나도 모르겠다’던 누나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아파트에서 오리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차피 오리는 누나가 전담하며 키울 생각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오리들이 부쩍 자랐다.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주는 대로 받아먹는 먹성 탓이었다. 그러나 첫날 사왔을 때의 귀여움은 온데간데없었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털은 물론 먼지까지 일었고 배설물 양도 만만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꽥꽥 하고 목청을 높이면 집안 전체가 울렸다. 조용히 있다가도 한 마리가 목청을 돋우면 나머지 한 마리도 덩달아 목청을 높였다.


“여보, 오리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진철이의 매형이 누나에게 물었다.


“누구 줄 사람 없어?”

“글쎄, 아는 사람들이 다 아파트 살고 또 단독주택이라고 해도 오리 키우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에 둘 순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수도 없고, 진철이도 그렇고.”

“당신하고 처남 마음은 알지만, 오리 때문에 가족들 건강도 걱정되고...”

“여보, 열흘만 기다려. 시골 보낼게.”


그날 밤 화장실에 가다가 누나와 매형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진철이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리와 헤어져야 할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다. 누나는 열흘 후 시골에서 서울 큰댁으로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올라오는 아버지 편에 오리를 보낼 생각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진철이는 오리를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과 오리 때문에 불편해 하는 매형에게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열흘 후 두 마리 오리는 먼 곳으로 여행 떠날 채비를 했다. 아버지는 먹을 것이 많은 시골에서 크면 좋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오리 알 내어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야 임마, 꽥꽥대지 말어. 시골가면 니들 뛰어놀 데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얼마나 좋은데...”


아버지는 녀석들의 머리를 툭툭 건드려가며 중얼거렸다. 진철이는 텔레비전을 포장했던 커다란 상자를 구해와 오리를 담고 테이프로 터진 곳을 모두 봉했다. 그리고는 밤알만한 크기의 숨구멍을 뚫어놓았다. 다듬고 남은 시금치와 상추를 넣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진철이는 출근길에 아버지를 서초동 남부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렸다. 직행버스 아래 짐칸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녀석들은 계속해서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이별을 알고 있는 듯 녀석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진철이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혹시 차멀미는 안 할지 몹시 걱정을 하는 사이 직행버스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잘 가거라, 우리 시골에서 다시 만나자. 건강하게 잘 지내야한다. 꼭.”


오리는 떠났지만 진철이와 누나 가족의 일상은 되돌아왔다. 냄새도 안 나고 꽥꽥 소리도 들리지 않아 좋았지만 마음속의 허전함은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라고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진철이를 잘 알고 있던 누나의 마음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아버지 생신 때문에 6남매 모두가 시골에 내려가는 날이었다. 진철이의 마음은 벌써 시골 고향에 가 있었다. 무엇보다 오리들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진철이는 자동차 문도 닫지 않고 곧장 오리가 있는 집 뒤 토끼우리로 달려갔다.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모습이 흰 빨래 사이로 들어왔지만 진철은 오리 두 마리가 더 궁금했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자 우리 안에서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꽥꽥, 꽥꽥.”


진철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들여다봤을 때 구유 속에 주먹만한 흰 알이 보였다. 6개월전 알 크기만 한 오리가 이렇게 커서 알을 낳는 것이었다. 


“야, 그 녀석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비틀 대고 정신 못 차리더라. 그래서 난 죽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집에 와서 풀어놓으니까 금방 기가 살아서 콩밭, 깨밭 들어가서 잎사귀를 다 따먹더구나. 허허.”


밭에서 들어오시던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다. 진철이는 그 상황을 상상하며 미소를 떠올렸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민철이는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 밭에서 김매다 군대 지원한 사연


여름 방학때 고향집인 시골에 내려와 있는 형석이는 오전 일찍부터 아버지와 함께 생강 밭을 매고 있었다. 오전 햇볕이 제법 따가운 7월 하순. 아버지는 벌써 한 시간째 허리 한번 펴지 않고 김을 매고 있는데 형석이는 이미 짜증이 나 있었다.


해가 뜨면 뜨거워서 일을 못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형석은 아침 6시부터 밭에서 김을 맸고 8시에 아침을 먹고 또 밭에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해가 제법 뜨거운데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실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아버지 당신이 해뜨면 뜨거워서 일을 못한다고 말씀하시고는 해가 뜨거운데도 여전히 일을 하고 계셨다.


형석이가 짜증 난 진짜 이유는 뜨거운 태양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해온 형석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100만원을 들여 힘들게 생강을 심어도 결국 70만원도 못 건진다는 사실을 형석이는 잘 알고 있었다.


작물이 잘 되면 전국적으로 공급이 너무 많아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서 손해를 보고, 어떤 해는 농산물 가격은 아주 비싼데 전염병이 훑고 지나가 쓰린 가슴으로 빈 밭만 바라봐야 할 때도 많았다. 이런 경험으로 다음해 생강을 많이 심으면 어김없이 가격이 폭락하고 아버지의 한숨은 더 깊어만 갔다. 이 같은 일은 매년 되풀이됐고, 형석은 이러한 현상을 늘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뙤약볕에서 일을 해도 결국 허탕치는 것이라는 걸 형석은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들어가유.”


형석은 짜증스런 목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조금 있으면 해 더 뜨거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더욱 더 부지런히 호미를 놀리셨다. 그때 형석이가 제법 큰 목소리로 아버지께 대들었다.


“아버지, 이거 농사지어서 어디 본전이나 찾을 수 있대유?”

“...”

“차라리 생강 안 심고 그냥 한해 놀리는 게 낫지 않대유? 정말 아버지만 보면 답답해 죽겠슈.”

“...”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밭을 매셨지만 이럴수록 형석은 더욱 화가 났다. 형석은 쥐고 있던 호미를 그 자리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논에 타고 다니시는 아버지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뛰쳐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오는데 쪽문 사이로 연신 허리를 구부리고 김을 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형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잡이에 있는 오토바이의 가속기를 잡아 당겼다. 형석이가 달려간 곳은 면사무소 병무과였다. 자원입대를 신청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본전도 못 건지는 농사일만 하는 아버지가 싫어 군대 갔다’ 이런 불만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아버지께서 하고 계신 밭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지 5개월 후에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1월 20일 논산훈련소였다. 형식은 막상 입영 통지서를 받고 나서 지난여름 그렇게 자원했던 일을 몹시 후회했다. 그건 단지 군대에 가기 싫어 자원했던 걸 후회하는 것이지 아버지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형석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달랐다. 추운 날씨에 군에 가는 아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제발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 자대배치를 받았으면 하는 게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는지 형석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성남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은 후 다행히 부산 해운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최 후방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군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했다. 


그러나 형석이가 간 부대는 다름 아닌 신병교육대 즉 훈련소였다. 물론 형석이는 본부중대 소속으로 훈련병을 가르치는 조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임병들이 모두 조교인지라 내무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형석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후임병들이 선임병 조교로부터 훈련병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군기가 매우 센 부대였다.


시간은 흘러 형석이가 입대한지도 7개월이 지났다. 7월 1일자로 일병으로 진급한 형석은 이 달 말 일병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휴가를 생각하니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엿한 지금의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드디어 휴가날. 형석이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까지 온 다음 다시 서부 터미널로 가 서산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오전 8시에 부대를 나왔지만 고향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7월 햇살이 제법 따가운 오후였다.


집 앞마당을 들어서려는데 반쯤 열린 쪽문 사이로 생강 밭을 매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작년 여름에 봤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형석이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지난해 밭에서 한 자신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형석이는 목이 메는걸 억지로 참고 아버지께 다가갔다.


“아버지, 저 왔슈.”


형석이는 멋쩍어 거수경례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왔냐? 더운데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밥은 먹었냐?”


성격이 무뚝뚝한 아버지는 비록 형석이의 손을 덥석 잡아 주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말씀으로 살갑게 맞아 주셨다. 원래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었지만 오늘은 왠지 달랐다. 아버지의 파란 농민 모자 아래로 짙은 주름살이 간간이 보였다. 형석이는 목이 메는 걸 다시 한번 억지로 참고 아버지께 물었다.


“올해는 생강 잘 들었대유?”

“야, 노란병 전부 돌아서 종자도 못 건지게 생겼다. 미리 농약 줬어야 했는데...”

“그러게유, 아버지 내년에는 여기에 비닐하우스 만들고 토마토 한번 심어봐유. 토마토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요즘 엄청 많이 찾던데...생강보단 나을 것 같아유.”

“그러게 말이다. 그렇다고 농부가 밭을 놀릴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래도 특용작물을 해야 할 것 같다.”


형석이는 군복을 입은 채 한 시간 넘게 아버지와 함께 생강 밭을 맸다. 땀이 비 오듯 했지만 조금이라도 아버지 일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철몰랐던 작년 이맘때 아버지 마음에 새긴 멍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석이는 이 더운 날 생강 밭 매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 아닌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20. 앵무새 아저씨, 꿋꿋이 사세요


진규 부부는 3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동네 공원에 놀러갔다. 파릇한 새싹이 돋을 때여서 진규 부부는 그 정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공원 입구에서 이들 부부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앵무새 여러 마리가 나뭇가지를 입으로 붙잡고 위에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와, 정말 신기하다. 앵무새들은 손대신 입으로 가지를 잡고 올라가네?”


진규가 먼저 신기한 듯 나무 위의 앵무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와, 정말, 이런 희한한 모습은 처음 보네.”


아내도 맞장구를 쳤다. 앵무새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진규는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잘 찍으면 사진대회에 응모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진규가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지쳐 있었다. 적당히 찍고 말 것이지 벌써 한 시간째 앵무새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보, 이제 앵무새는 그만 찍고 저좀 찍어주세요.”

“가만 있어봐. 지금 당신 사진 찍어 주는 게 문제가 아냐.”


작품 사진에 욕심이 난 진규는, 아내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무 위에서 앵무새가 신기한 동작을 할 때마다 숨죽이고 있던 진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그때 앵무새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아저씨가 진규의 모습을 보고 말을 건넸다.


“뉘신데 앵무새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요?”

“네, 사진찍는 게 취미인데요. 나무 위 앵무새 모습이 그림 같네요. 여러 장 찍어서 그중 잘 나온 걸로 사진대회에 한번 올려보려고요.”

“네? 사진대회에요?”

“헤헤, 누가 알아요? 사진 대회에서 1등 하면 텔레비전에 나올지도...”


앵무새 주인아저씨는 사진대회에 올린다는 말과 텔레비전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서 아저씨는 장대를 이용해 나무 위에 있는 앵무새를 건드려서 더 멋진 포즈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진규의 움직임은 더 바빠졌다. 진규는 문득 아저씨와 앵무새가 동시에 궁금해졌다.


“아저씨, 처음에 어떻게 해서 앵무새를 기르게 됐나요?”

“네, 얘들이 강아지를 좋아했는데, 집안에서 키울 여건이 안돼서 앵무새로 바꿨어요.”

“네. 그랬군요.”

“얘들 엄마가 죽고 나서 얘들이 앵무새한테 정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


순간 진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아저씨의 아픔을 건드린 것 같아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에게 무안한 마음도 있고, 날도 저물어 가는 참이라 들어가기 위해 카메라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앵무새 아저씨가 또 말을 걸었다.


“이 동네 사는 부부 같은데, 참 보기 좋네요. 이 앵무새 사람 말 잘 따라하는데 한번 들어볼래요?”


진규 부부는 앵무새 목소리를 한번 듣고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저씨의 목소리를 내도 앵무새는 눈만 멀뚱멀뚱 할 뿐이었다.


“야, 왜 안 따라해? 자, 아빠! 엄마!. 집에서는 잘 하잖아. 오늘 따라 더 안하네.”


아저씨는 진규 부부를 보기가 민망했는지 계속해서 앵무새와 씨름을 했다. 이렇게 30분이 지나자 날은 어두워지고 쌀쌀해졌다. 진규 보다는 아내의 속이 더 탔다. 자신은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남편이 앵무새 사진 찍는데 오후 내내 구경만 했기 때문이었다.


“저어, 아저씨 다음에 구경할게요. 오늘은 틀린 거 같네요. 너무 늦기도 하고...”

“이상하다. 집에서는 잘 하는데 밖에 나오면 왜 안하지?”

“다음에 기회 있으면 그때 구경할게요.”

“네, 잠깐만요.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잠깐 들러서 앵무새 소리 한번 들어볼래요?”


그러나 진규 부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아저씨가 나쁜 분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아저씨 집에 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의 진규는 이미 아저씨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저씨의 집은 그리 넓지 않았다. 진규 부부는 비좁은 방에서 아저씨와 함께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앵무새 노래를 들었다. 이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콜라를 따라 진규 부부 앞에 내놓았다.


“이거 드세요.”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콜라가 담긴 컵 두 개를 내려놓고 부끄러운 듯 저만치 가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순간 진규 부부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집에 손님도 찾아오지 않아 아이들이 무척 외로웠고 또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했다는 것을. 아내는 진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얘, 이리와봐, 너 이름이 뭐니. 몇 살이야?”

“수진이에요. 최수진. 아홉 살인데요.”

“이리와, 화장실로 들어가자. 아줌마가 씻어줄게.”


진규 아내는 두 아이들을 씻긴 후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 주었다. 아내의 품에 안겨 화장품을 바르는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에구, 나는 한번도 애들 얼굴에 뭐 발라준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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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진규 아내를 보며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진규의 마음도 뭉클해졌다. 아저씨 집에 들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행복해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한편 마음속으로나마 아저씨 집에 오는 걸 내키지 않아 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진규와 아내는 아저씨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특히 진규보다는 아내가 아저씨 집안 형편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밥이라도 해놓고 올걸. 아니, 설거지라도 해주고 올걸. 부엌에 한 가득이던데...”


바로 그때 진규의 휴대전화벨이 울렸다. 앵무새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아내가 얘들 엄마처럼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거듭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낮에 공원에서 만났을 때 혹시나 해서 명함을 한 장 드렸는데 잊지 않고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그날 저녁 진규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앵무새 사진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을 글로 써 올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 후 진규와 아내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그 앵무새 아저씨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앵무새와 함께 생활하는 아저씨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앵무새 아저씨의 마지막 멘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한 달 전 저희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이렇게 텔레비전에까지 나올 수 있게 해주신 젊은 부부께 감사드립니다.”




21. 함께 할 운명


“깜둥아, 이제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살 수 있을 거야.”


승태는 애완견인 깜둥이를 번쩍 들어올리며 깜둥이의 입에 뽀뽀를 했다. 승태의 아내도 깜둥이가 귀여웠는지 품에서 떼어놓을 줄을 몰랐다.


“와,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는 처음 봐. 새카만 털이 내 머리카락하고 똑같네. 히히.”


승태 부부가 애완견을 가까이서 만져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이 깜둥이를 키워달라며 승태 처갓집에 주었는데 처갓집 역시 개를 기를 형편이 안 돼 승태 부부는 이번 추석 때 시골에 살고 계시는 승태 부모님께 데리다 주기로 했다.


깜둥이는 벌써 이틀째 승태네 빌라 계단에서 지내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아침 일찍 승용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갈 참이었다. 이틀 동안 함께 한 시간이었지만 승태 부부는 깜둥이와 꽤 정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승태 부부는 깜둥이를 라면박스에 넣은 다음 승용차 뒷자리에 놓았다. 그러나 깜둥이는 박스를 박차고 나와 운전하고 있는 승태의 무릎에 떡 하니 앉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제자리에 갖다 놓아도 헛수고였다.


“그 녀석 참, 내가 그렇게 좋은가. 그래 좋아. 대신 운전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


승태는 점잖게 깜둥이를 타일렀다. 깜둥이는 승태 말을 알아들었는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도 깜둥이는 아내가 타고 있는 옆자리에 옮겨가 아내의 무릎에 턱을 괴고 앉는가 하면 창문에 앞발을 올려 몸을 세우고는 얼굴을 빠끔히 내밀어 창밖 풍경도 구경하는 것이었다.


“여보, 깜둥이, 전 주인이 차에 태우고 많이 다녔나봐.”

“맞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달리는 차안에서 두발로 서서 어떻게 창밖을 내다볼 수 있어?”


애완견을 처음 접해보는 승태 부부는 깜둥이의 재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애완견을 식구처럼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깜둥이가 먼저 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풀숲에 가 쉬를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왔다. 녀석은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일을 보고 있는 승태의 바지자락을 물어뜯으며 재롱을 부렸다.


“야야, 깜둥아 얌전히 있어. 너 혼난다.”


승태는 깜둥이를 뿌리치는 척 다리를 살짝 흔들었지만 사실 이런 깜둥이가 자랑스러웠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깜둥이를 쳐다보았다. 사람들과 깜둥이를 번갈아 보면서 승태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시골에 도착한 깜둥이는 외양간 앞에 있는 흰둥이 옆에서 지내게 되었다. 승태는 시골에서 깜둥이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늘 논밭에 계신 부모님이 깜둥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따라 밭에서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었다. 밭을 망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흰둥이 옆에 매어둔 것이었다.


“깜둥아, 그래도 답답한 서울보다 공기 맑은 시골에서 사는 게 더 좋을 거야.”


추석 연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깜둥이는 눈물을 흘렸다. 승태의 차에 오르고 싶어 펄쩍 뛰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승태 부부도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차안에서 아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승태에게 물었다.


“여보, 깜둥이 잘 살까요? 아까 보니까 송아지 사료밖에 없던데. 아버님이 따로 개 사료를 주진 않을실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마. 잘 적응할거야. 난 깜둥이를 믿어.”


승태 부부의 눈앞에 깜둥이가 아른거렸다. 발밑에서 녀석이 ‘멍멍’ 하며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려올 때 그랬던 것처럼 막히는 귀경길에도 깜둥이만 있었으면 즐겁게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승태부부는 시골에 두고온 깜둥이 얘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픈 이별의 슬픔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듯 했다. 바쁜 일상에 �기다보니 깜둥이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일주일 후 승태는 시골에 전화를 걸었다. 깜둥이가 많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저 승태예요. 저녁 드셨어요?”

“응,”

“그런데 깜둥이 잘 있어요?”

“그래, 그런데 그 조그만 개가 웬 밥을 그리 많이 먹냐? 송아지 사료 못 당하겠다.”

“...”


승태는 너무나 급한 나머지 아버지가 식사하셨는지 여쭌 다음에 어머니 대신 깜둥이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그만큼 승태의 마음속에 깜둥이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깜둥이가 부모님한테 사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속상했다. 애완견에 대한 깊은 정이 없었던 부모님은 깜둥이에게 송아지 사료를 먹이면서 사료값을 걱정했던 것이다.


한편 시골에 계신 승태 부모님은 깜둥이 때문에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옆 동네 사는 군호 엄마가 깜둥이를 사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영감, 저 깜둥이 어쩌죠? 군호네서 30만원 준다는데? 팔어?”

“뭐? 30만원? 무슨 개가 그리 비싸댜?”


순간 승태 아버지의 귀가 솔깃해졌다. 덩치 큰 개도 10만원 정도인데 저 작은 개를 30만원이나 쳐준다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흰둥이가 있었기 때문에 깜둥이는 굳이 있을 필요 없다고 승태 부모님은 생각했다.


“그런데 임자, 승태가 깜둥이 절대 팔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게요. 추석 때 보니까 이 개하고 꽤 정이 든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승태 부모님은 깜둥이를 옆동네 군호네 집에 팔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소 사료 값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잔뜩 실망할 승태의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승태 부모님께 있어서는 지금의 생활, 그 현실이 중요했다.


다음 날 깜둥이가 팔려갔다는 비보를 들은 승태 부부는 적잖이 실망했다. 부모님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깜둥이와 너무 많이 정이 들었던 터라 속이 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태 부부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5개월 후 어머니 생신 때 승호 부부는 시골에 내려왔다. 집에 가려면 군호네 집 앞을 지나가야 했다. 승태 부부는 혹시 군호네 집 앞에서 깜둥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그 앞에서 차를 잠깐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깜둥이가 5개월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군호네 앞마당에서 풀짝풀짝 뛰어노는 것이었다.


승태부부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차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깜둥이가 달려왔다. 5개월이 지났는데도 깜둥이는 승태부부를 잊지 않았는지 꼬리치며 난리법썩을 떨었다. 그리고문이 열려 있는 차에 훌쩍 올라타고는 아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5개월 전 이 차를 타고 시골에 왔던 일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승태부부는 깜둥이를 떼어놓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깜둥이는 계속 뒤따라 왔다. 깜둥이 모습이 까만 점이 될 만큼 멀어져서야 승태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닦았다. 깜둥이를 다시 데려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을 했다.


잠시 후 승태의 행복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집에 도착한지 20분정도 지났을까. 방에 있다 외양간을 둘러보러 마당에 나온 승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군호네집에 있어야 할 깜둥이가 승태의 차 문을 박박 긁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호네와 승태네집은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알고 따라온 것인지 승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승태는 깜둥이의 눈을 가린 채 다시 군호네 집에 갖다 놓았다. 그러나 깜둥이는 쏜살같이 승태의 뒤를 따라왔다. 이번에는 군호네 식구들한테 목사리로 묶어두라고 일렀지만 깜둥이는 목사리의 가죽 끈을 물어뜯어 줄을 끊은 후 너털너털 줄을 매달고 다시 승태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승태는 깜둥이를 다시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군호네 집으로 건너간 승태는 그동안의 사정이야기를 하고 어머니 생신 선물로 준비한 현금 30만원을 주고 깜둥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다음날은 깜둥이가 넉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25kg 개 사료 두 포대를 사다놓았다.



22. 죽음을 넘어선 우정


영빈이 일행이 산 정상에 올랐을 즘 갑자기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산을 올라올 때는 검은 구름이 몇 점 떠다녔을 뿐인데 정상에 다다르자 많은 눈구름이 몰려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눈보라가 약해지기만을 바라면서 영빈이 일행은 겨울산을 계속 올라갔다.


“영빈아, 너 괜찮니?”


세찬 눈보라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영빈의 손을 끌어주던 현준이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영빈이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지만 현준이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괜찮아. 곧 잠잠해지겠지.”

“그래, 조금만 힘내자. 자, 내 손 꽉 잡어.”


현준이는 영빈의 손을 잡아끌면서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두 달 전 심장병 수술을 받은 영빈이가 주로 실내에서만 생활하면서 움츠려 있는 게 안 돼 보여 현준이가 겨울산행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등산은 그동안 영빈이가 생사를 넘나들며 그 고통스런 심장병을 이겨냈듯이 겨울 등반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친구 현준이의 깊은 배려였다. 그러나 겨울등반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 영빈 일행은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등반에 오른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시골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꼭 호강시켜드려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선숙이. 비교적 잘 나가던 집 외동딸로 생활하다 넉 달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가장이 된 미경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지난 학기부터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필재. 사업이 실패한 후 후유증으로 부모님이 이혼의 기로에 서 있는 현준. 다섯 명 모두 희망과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이었지만 특히 영빈이는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희망과 용기가 절실했던 터였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네 명의 친구들은 학교에서도 자신들의 아픔을 영빈 앞에서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 겨울 산 등반 역시 겉으로는 나름대로 희망과 용기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영빈을 위한 친구들의 깊은 우정이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미안해 영빈아.”

“아냐, 오히려 쉬운 줄 알았다면 안 왔을 거야. 괜한 소리하지 마 현준아.”

“그래,”


둘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드디어 100여 미터 앞에 정상고지가 보였다. 서서히 눈보라도 그치고 있었다.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양도 비추기 시작했다. 산꼭대기의 날씨는 참으로 변덕 같았다. 일행은 불안한 마음을 떨치며 순식간에 정상에 올랐다.


“야, 전망 좋다. 야호.”


미경이가 먼저 야호를 외쳤다.


“와, 천사 같은 흰 세상이다. 야호 야호 야호 야호.”


영빈, 현준, 선숙, 필재도 입을 모아 고함을 질렀다. 제각기 희망과 용기가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어떤 고난도 다 헤쳐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발밑에서 눈사태가 났다. 해가 비추면서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엄청나게 쌓인 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다행히 눈사태에 휘말려 들어간 사람은 없었지만 내려갈 길이 그만 끊기고 말았다.


“어...어떡하지?”


영빈이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현준에게 물었다.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우선 피신할 데를 찾아보자. 이곳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그래, 얘들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영빈이와 현준이는 친구들의 불안감을 떨치게 하려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애가 타고 있었다. 세 명의 친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피신할 곳을 찾던 다섯명의 친구들은 산 정상의 동쪽 방향으로 나 있는 조그만 석회암 동굴을 발견했다. 우선 몸을 피신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 구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추위가 엄습했다. 워낙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온도가 급강하 했던 것이었다. 추위는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들은 눈속에 묻혀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지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눈이 쌓이면서 더 이상 솔가지를 주워올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각자의 배낭을 열었다. 등산장비로 가져왔던 텐트와 침낭을 불에 넣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는 체온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갑, 모자 심지어 신고 있던 등산화까지 벗어 불을 지펴야만 했다.


“얘들아, 조금만 더 참자. 날이 밝으면 구조대가 도착할거야. 절대로 잠자면 안돼.”


현준이가 꺼져가는 불 앞에서 친구들에게 용기를 복돋워주고 있었지만 이들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영빈이도 현준이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신은 혼미해져 가고 있었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몸을 마찰했다. 서로의 입김을 모아 온기를 만들었다. 점점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봄날 같은 낙원이 이들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밤 영빈이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가 자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도담도담 자고 있는 꿈을.., 너무나도 포근한 꿈이었다.


아침 해가 떠올랐다. 동쪽방향에 위치한 이 동굴에 햇빛이 가장 먼저 닿았다. 동굴 안까지 햇빛이 비추고 나서야 영빈은 눈을 떴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가슴이 무척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네 명의 친구들은 모두 낙원으로 떠났다. 영빈이만 동굴에 남겨놓고 모두 떠났던 것이다. 땔감으로 모두 사용한 줄 알았던 등산용 털 스카프 넉 장이 영빈의 가슴에 칭칭 감겨 있었고 친구들은 차례차례 엎드린 채 영빈의 몸 위에 포개져 있었다. 영빈을 얼어 죽지 않게 하려고 털 스카프에 이어 몸으로 친구를 보호했던 것이다.


지난 밤 영빈이의 꿈속에 나타나 이불을 덮어주던 가족들은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꿈은 아니었다. 추위에 정신이 혼미해져가던 영빈에게 있어 단지 꿈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영빈이는 스카프와 친구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 가도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23. 동상 아저씨, 고마워요


동필이는 길거리에서 동상처럼 꼼짝 안하고 서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네킹처럼 얼굴에 잔뜩 화장을 하고 사람들이 지나는 큰길가에 동상처럼 서 있다가 이따금씩 사람들을 놀래주고 시선을 끌기도 했다. 동필이는 주로 강남 역에서 통신회사의 휴대폰 판촉행사 때 동상역할을 하곤 했다.


간혹 동필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속았다며 한 대 때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럴수록 동필이는 마음이 흐뭇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 있었던 것은 동필이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동필은 강남역 2번 출구 앞거리에서 동상처럼 서 있었다. 그때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동필의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을 살피던 꼬마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 동상 살아 있는거야?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쎄, 돌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마네킹 같기도 하고...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하자 꼬마는 동필의 모습을 자세히 실피기 시작했다. 팔을 만져보기도 하고 얼굴에 바람을 불어보기도 했다. 동필이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양손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든 다음 꼬마를 향해 ‘아이러브’ 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꼬마아이가 엄마를 향해 외쳤다.


“엄마, 이 동상 아저씨, 아빠하고 비슷하게 생겼다. 여기 봐봐.”

“...”


엄마는 아이의 말에 대답이 없었다.


“엄마, 그런데 아빠 미국에서 언제와? 올 때 바비인형 사 오신다고 했잖아?”

“민지야, 아빠는 이다음에 민지가 이만큼 크면 그때 오실거야. 돈 많이 벌어서 바비 인형 큰 걸로 사다 주실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 응?”

“아이,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맨날 맨날 아빠 온다고 해놓고는...앙앙!”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끄는 엄마의 눈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눈물이 흐른 것이었다. 동필이는 순간 민지라는 아이의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눈치 챘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돌아서는 민지의 눈물 서린 눈빛에 아빠와 바비 인형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 있는 걸 동필이는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동필은 그날도 어김없이 길거리에 서서 동상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일주일전에 보았던 민지와 엄마가 그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민지가 동필 이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동필이의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엄마, 여기 와봐. 동상아저씨가 그대로 있네. 정말 동상인가 봐.”

“어... 그러네.”


엄마는 민지의 손을 급하게 끌며 서둘러 그 앞을 지나치려고 했다. 저번처럼 민지가 아빠 얘기를 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민지의 손을 잡으려고 동상 앞에 다가서는 순간 동필이는 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민지 앞에 펼쳤다. 그리고는 그 자세로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동상이라고 생각했던 민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고, 깜짝이야. 동상 아저씨가 움직이네? 정말 이상하다. 그런데 이게 뭐지?”


동필이의 손에는 자그마한 바비 인형이 올려져 있었다.


“와! 바비 인형이네. 정말 갖고 싶었던 건데.”


민지가 인형을 집어 들려고 하는 순간 동상의 양 손이 머리위로 올라가더니 하트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마치 로봇이 하는 것 같은 말이 들려왔다.


“삐리삐리. 민지 안녕? 삐리삐리. 이건 아빠가 미국에서 보내는 선물이야. 삐리삐리. 바비 인형이야. 삐리삐리. 이 다음에 더 큰 바비 인형 사가지고 오신대. 삐리삐리.”


이 말이 끝나자마자 동필이는 양 팔을 내려 완벽한 동상 모습을 취했다.


“어? 동상아저씨가 말을 하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그러나 동필이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리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동상이 돼 버린 것이었다.


동필이는 일주일전 민지와 엄마의 슬픈 대화를 듣고 바비 인형을 하나 준비했다. 동필이는언제 그 앞을 지날지 모르는 민지를 기다리며 일주일 동안 바비 인형을 소매 속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24. 앵두나무에 얽힌 애절한 사연



호영이는 지난 2월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 중턱에 위 전셋집을 얻었다. 서울의 전세값이 비싸기도 했지만 호영이는 자연에 둘러싸인 맑은 공기 속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성남으로 집을 구한 것이었다.


호영이가 사는 집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 노루목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또 공원 주변이 비교적 산새가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람쥐, 딱따구리 등 온갖 산짐승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야, 동물원, 식물원이 따로 없네.”


호영이는 집 근처에 펼쳐진 자연경관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영이는 아침마다 노루목공원에서 운동을 했다. 공원 한가운데 팔각정 앞에는 앵두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호영이는 앵두나무에 잎사귀가 나오지도 않은 2월부터 은근히 통통한 앵두열매를 기다렸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다. 앵나나무는 호영이의 바람처럼 어느 덧 잎사귀가 돋아나고 4월에는 제법 무성해졌으며 5월 초순에는 꽃도 활짝 피었다. 마디가 굵고 잎사귀 사이가 촘촘한 걸로 보아 아주 많은 앵두가 열릴 것이라고 호영이는 생각했다.


농촌에서 자란 호영이는 가지를 보고 숱한 앵두가 달릴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잘 알고 있었다. 5월 중순 앵두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마치 손으로 뿌려놓은 듯 나뭇가지에는 앵두가 더덕더덕 달려 있었다. 


“와, 정말 굉장한데... 열 되는 딸 수 있겠는 걸.”


호영이는 벌써부터 새콤달콤한 앵두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한 열흘쯤 지나자 앵두가 연분홍빛을 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물이 통통 오른 앵두를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영이는 연분홍빛의 앵두가 부쩍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채 익지도 않은 열매를 누군가가 따 갔음을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누구지?”


호영이는 앵두를 따간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꼭 먹어서 맛이 아니라 통통한 앵두를 즐겨보는 멋이 더 좋다고 호영이는 생각했는데 호영이의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다음날엔 앵두나무 가지도 여기저기 꺾여 있었다.


“아니,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호영이는 익지 않은 앵두를 따 가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바로 그때 허리가 몹시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앵두나무 속을 파고들었다. 맞은 편 빌라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였다. 호영이는 그 할머니가 좀 야속하긴 했지만 워낙 연세가 지긋한 분이라 뭐라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가지를 꺾으면서까지 설익은 앵두를 따 가는 할머니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보통 때보다 일찍 노루목공원으로 운동을 나온 호영이는 계단을 올라다가 깜짝 놀랐다. 청솔모 두 마리가 앵두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앵두를 따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호영이는 숨을 죽이고 계단에 바짝 엎드려 두 녀석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두 녀석은 가지 끝에 매달린 앵두를 먹기 위해 중간에서 이빨로 가지를 꺾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참으로 영리한 동물이었다. 가지를 꺾은 다음 매달린 열매를 손으로 따먹는 녀석들을 보고 호영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호영이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럼, 어제 그 할머니는...?” 


호영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호영이는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저번처럼 그 할머니가 앵두나무 밑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할머니는 나무 아래 떨어진 앵두를 줍고 계셨다.


“할머니, 여기서 뭐하세요?”


호기심에 가득 찬 호영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응, 누가 익지도 않은 앵두를 자꾸 따가잖우. 가지도 다 부러뜨려 놓고.... 따다가 가지 흔들어서 땅에 다 떨어지고 말야... 설익은 앵두도 땅에 떨어지면 하루정도면 익거든. 그래서 줍는거라우.”


순간 호영이는 뜨끔했다. 어제 청솔모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건 봤지만 할머니도 청솔모와 마찬가지로 설익은 앵두를 몰래 따간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호영이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그거 주어다 뭐에 쓰시게요?”

“웅, 술 담그려고.”

“시장에서 좋은 거 사다가 담그시죠 왜...?”

“이 앵두나무 우리 집 영감이 심은 거라우. 10년 됐지. 여기 공원 만들기 전 밭이었을 때 묘목 갖다 심었지. 공원 만들고 나서 또 옮겨 심은 거라우.”

“네, 그렇군요. 그런데 할아버지는요?”

“이 앵두나무 심고 3년 만에 죽었다우. 꼭 이맘때지. 앵두열매가 처음 열어 막 물오를 때였지. 앵두 다 익으면 술 담아 먹어야한다고 좋아하며 노래 부르던 영감인데...”

“...”


할머니는 옛 생각이 났는지 잠시 한숨을 쉬었다. 호영이는 그제서야 모든 사연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맘때면 이 앵두나무의 열매를 따서 앵두 술을 담고 그 술을 할아버지 묘에 한잔씩 뿌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청설모가 먼저 나타나 설익은 앵두를 따가고 할머니는 녀석들이 따먹다 떨어뜨린 설익은 앵두열매를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깊은 사연도 모르고 할머니가 설익은 앵두를 따가고 그것도 모자라 가지를 꺾는다고 생각했던 호영이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또 한편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나서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 날 저녁 호영이는 재래시장에서 잘 익은 앵두 한 되를 사왔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사시는 빌라 현관문 앞에 놓고 벨을 누른 다음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25. 인생의 은인 비둘기


수혁이는 탑골공원을 지나 종로 1가 쪽으로 걸어가다 보도블록 위에서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비둘기 여러 마리가 쟁반 위에 놓인 밥과 김치찌개를 번갈아 가며 쪼아 먹는 모습이었다.


“와, 신기하네. 비둘기가 밥하고 김치찌개를 다 먹네?”


수혁이는 너무나 신기한 나머지 가방 속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 이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비둘기에게 접근해 사진을 찍는 동안 비둘기들은 연신 날아올랐다 내려오곤 했다. 다른 비둘기가 자기 몫을 빼앗을까봐 안전부절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수혁이는 더 가까이 다가가 이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비둘기들은 정신없이 날아올랐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안경가게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수혁이에게 부탁 조로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보시오. 젊은이, 적당히 좀 찍으시오. 비둘기 밥 먹다 체하겠소. 허허.”


연세가 지긋한 이 안경가게 아저씨는 주문한 점심을 일부러 조금 남겨 두었다가 비둘기 먹으라고 밖에 내 놓은 것이었다. 점심때만 되면 아저씨는 유리창문을 통해 비둘기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 하셨던 것이다.


사진 찍는 것까지 만류하며 끔찍이도 비둘기를 배려하는 아저씨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 수혁이는 그 까닭을 물었다.


“몇 해 전 심한 우울증 때문에 세상을 비관하며 죽을 날만 기다렸지. 어느 날 안에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비둘기들이 땅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분주하게 올랐다 내렸다 하더라고. 거짓말 같지만 한 열흘 정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우울증이 싹 사라진 거야.”


수혁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떡였다. 비둘기는 안경가게 아저씨를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한, 희망으로 살게 해 준 인생의 은인이었다.



26.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경필이는 그 날 새벽 유서를 썼다. 카드 빚 오천만원 때문이었다.


"여보 미안해. 우리 아영이 유치원 들어가는 것도 못 보고... 부디 잘 키워주오. 당신과 아영이 에게 너무 미안할 뿐이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부디 용서하오. 사랑해요."


경필이는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강까지 걸어갔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경필이는 물이 가장 깊은 다리 한가운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 맞은편에서 엄마인 듯한 젊은 여자가 아영이 만한 여자아이를 업고 엉성한 걸음으로 경필이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경필이는 잠시 주춤했다. 경필이는 이들이 지나가면 곧바로 한강 물에 몸을 던질 생각이었다. 죽음을 앞둔 상황. 만감이 교차한 가운데 경필이는 그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굳게 마음을 먹고 온 경필이에게 그 어떤 요소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바뀌는 걸 원치 않았다. 죽음으로써 한시라도 빨리 카드 빛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모녀가 그의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때 경필이는 두 모모녀의 짧은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엄마, 힘들지? 나 이제 걸어갈래”

“안 돼. 해 뜨기 전에 도착해야 싱싱한 꽃 볼 수 있어. 안 늦으려면 엄마가 너 업고 가야해.”

“히히히. 싱싱한 꽃들 빨리 보고 싶다.”


경필이는 다리를 건너올 때 육교 난간에 걸린 ‘용산 야외 봄꽃 축제장 개장’ 이라는 플래카드를 본 일이 떠올랐다. 젊은 엄마와 딸아이가 그곳에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무심코 모녀의 뒷모습을 본 경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에 업힌 딸의 두 다리는 없고 바지자락만 강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또한 엄마의 뒷짐엔 흰색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두 다리가 없는 딸은 엄마가 힘드니까 걸어가겠다고 하고, 앞을 못 보는 엄마는 서둘러 가야 싱싱한 꽃을 볼 수 있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모녀.


경필은 모녀가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와 아이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벗었던 구두를 다시 신었다. 눈물을 훔치며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7. 아름다운 마지막 비행


"김대위 축하하네. 벌써 500시간 무사고 비행이야."

"고맙습니다. 연대장님.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말게. 자네는 틀림없이 해 낼 수 있을 거야."


김 대위는 이번에 다섯 시간의 2만피트 고공비행을 무사히 마치면 내년 국군의 날 에어쇼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 공군에게 있어 에어쇼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처럼 꿈에서 그리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연대장님, 에어쇼에 참가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자 어서 준비하게."

"예."


태안반도 10월의 오전 하늘은 티없이 맑았다. 약간의 바다안개가 깔려 있었지만 상공으로 날아오르면 문제될 게 없었다. 김 대위의 F34 전투기가 가볍게 공중으로 솟았다. 


김 대위가 서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려고 조종관을 작동하던 순간 ‘꿍’ 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철새 한 마리가 오른쪽 날개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프로펠러는 멈춰 섰고 전투기는 한쪽으로 기울며 급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김 대위는 본부에 긴급하게 메시지를 띄웠다.


"본부 본부, 삼네 둘공 하나. 새 들었다!!"(철새가 전투기 날개로 빨려 들어갔다)

"비오비오, 하나 둘공 삼네, 엄브렐라 엄브렐라 꽂아라(낙하산으로 비상탈출 하라)


비상 탈출 명령이 떨어졌지만 기수는 이미 태안 시내 주택가를 향해 중심을 잃고 돌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망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전투기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었다.


박 대위는 그 사이 꿈을 꾸었다. 푸른 창공을 거침없이 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는 꿈을. 그 뒤에는 여러 마리의 독수리가 지그재그로 날며 자신의 뒤를 따라 날며 공중묘기를 펼쳤다. 국군의 날 에어쇼 꿈을 꾼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박 대위는 상향조정레버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레버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박 대위는 이를 악물고 더 세계 잡아 당겼다. 손마디에서 ‘우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정신이 혼미해져 갔지만 박 대위는 끝가지 상향 레버를 놓지 않았다.


잠시 후 주택가 넘어 흰돌산 중턱 송전탑 밑에서 폭발음과 함께 한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눈이 부셔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강력한 빛이 끝없이 솟았다.


굉음에 놀란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손마디 뼈가 으스러지는 참으면서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박 대위의 필사적인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그곳 주민들이 무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박 대위는 마지막 그러나 아름다운 비행을 마쳤다.




28. 연로한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

"할머니, 만약에 돈이 많이 생기면 뭐 하실 거예요?"

"무슨 돈이 생겨?"

"그러니까, 만약에 할머니한테 큰돈이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돈이 왜 떨어져.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

"할머니, 그럼 소원이 뭐예요?"

"소원? 많이 팔리면 좋지."

"…"


어느 토요일 오전. 종로 3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천막을 치고 과일과 군밤을 파는 올해 82세 할머니. 50년째 이 자리에서 과일을 팔고 있었다. 안에서 보면 여기 저기 찢어진 천막을 파란색 테이프로 붙여 누더기가 따로 없지만 할머니에게는 소중한 삶터였다. 할머니는 변변한 판매대도 없이 바닥에 라면, 과자 상자 등에 과일을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잡지사 기자인 수창이는 언젠가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본 이 할머니를 취재하기 위해 아침부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연세가 워낙 많은 할머니여서 취재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도 수창이는 끈질기게 할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에 들어가 꾸중을 들어야 했던 만큼 수창이의 마음은 바빠졌다.


“할머니, 최고 많이 파시는 날은 얼마나 돼요?”

“웅, 공치는 날이 더 많아. 최고 많이 팔린 날은 2만원이야.”

그래서 처음에 수창이가 할머니께 소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답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수창이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과일은 할아버지가 경동시장에서 떼어오는데 할아버지의 연세가 올해 103세라는 사실이었다. 입을 다물지 못한 수창이는 설마하는 마음에 몇 번을 여쭈었지만 역시 할아버지 연세는 103세라고 말씀하셨다. 일제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자주 어울렸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수창이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지만 바쁜 취재일정 때문에 탑골공원에서 쉬고 있다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겨울에는 오징어, 쥐포 등 건어물을 주로 판매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과일을 파셨다. 종로 거리라서 떡볶이나 어묵 등이 인기가 있을 법 한데 요리를 한다는 게 할머니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느냐의 수창이의 물음에 할머니는 도움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한 청년이 20분이면 할 수 있는 장사준비를 할머니 혼자 하다보니 2시간은 넘게 걸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의 도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할머니에게 날마다 점심을 무료로 갖다 준다고 했다. 해장국 가게 주인이 할머니가 꼭 자신의 어머니 같아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며 할머니는 흐뭇해하기까지 하셨다 하신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도중에 두 명의 이웃이 다녀갔는데 한 아저씨는 음료수를 갖다 드렸고 건너편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는 과일 2천원어치를 사갔다.


드디어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할머니가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가져가서 먹으라고 비닐봉투에 과일을 담기 시작했다. 당황한 수창이는 손을 내저으며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아이구,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그러나 계속되는 할머니의 배려에 수창이는 과일을 몇 개 사기로 결정했다. 천원에 두 개 하는 자두 다섯 개를 봉투에 담고 5천원을 건네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도움 받기 싫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배려한 수창이의 행동이었다. 멀리서 할머니가 천원짜리 지폐를 흔들며 오라는 손짓을 했지만 수창이는 더 빨리 걸음을 떼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만원짜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창이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갑 속에 오천원밖에 없었던 터라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잡지사에 도착한 수창이는 서둘러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를 쓰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수창이는 눈시울이 불거졌다. 20년 전 황달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퇴근 무렵 수창이는 팀장님에게 3만원을 꿨다. 그리고는 다시 종로 그 할머니의 삶터를 찾았다. 전봇대 뒤에서 할머니를 몰래 지켜봤지만 여전히 과일을 사가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는 그저 물끄러미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창이는 준비해간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과일을 담기 시작했다. 수박, 토마토, 바나나 등 꾸역꾸역 담았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수창이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며 할머니께 물었다.


“예, 3만 2천원인데, 3만원만 주소.”


할머니는 무척 신이 나 있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팔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창이는 3만원을 내고는 그 자리를 떴다. 몇 발짝 걸음을 떼던 수창이는 도로 할머니의 천막 앞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과일이 너무 무겁네요. 잠시 들를 데가 있는데 잠깐만 맡겨주시겠어요? 10분 있다가 찾으러 올게요.”

“그렇게 하시구랴.”

까만 비닐봉지 여러개를 내려놓은 수창이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성남 집에 가기 위해 수서행 3호선 지하철을 탔다. 수창이는 할머니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너무나 기뻤다.




29.매미야 미안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서준이는 밤새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뻔 했지만 새벽 매미가 또 깨웠습니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난 서준이는 아침부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엄마, 나 여기서 못 살겠어.”

“아침부터 왜 그러니?”

“저 매미 녀석들 때문에 한숨도 못 잤어. 정말 짜증나. 이놈들은 잠도 안 자나봐.”

“녀석도 참.........”


서준네 집이 바로 산 밑에 있었기 때문에 매미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건 당연했습니다. 서준이는 귀를 양손으로 막은 채 집 뒤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참나무에 매미들이 더덕더덕 붙어있었습니다.


“이녀석들, 한번 혼나볼래?”


서준이는 산에서 주운 장대를 휘저으며 매미들을 �았습니다. 푸덕푸덕 날갯짓과 함께 매미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날았습니다. 그때 날아오르던 매미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퍼덕거렸습니다.


“요녀석 봐라. 너 마침 잘 걸렸다.”


서준이는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매미를 엄지와 검지로 집었습니다. 목청껏 울던 매미도 찔끔찔끔 울음소리를 토해냈습니다. 그때마다 서준이는 매미의 꽁지를 꾹꾹 누르며 억지로 울음소리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퍼득이는 날개를 얼굴에 갖다 대기도 했습니다.


“와, 시원한데. 앞으로 너는 내 선풍기가 되어 주어야겠다. 히히히.”

서준이는 콜라 페트병에 매미를 넣었습니다. 매미는 몇 번을 곤두박질 하다 바닥에 누웠습니다. 꼭 죽은 것만 같았습니다.


“매미야, 쉬고 있어. 학교 다녀와서 너를 선풍기로 쓸 거야. 이 안에서 힘 많이 저축해놔.”


서준이는 매미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페트병에 조그만 구멍을 뚫었습니다. 서준이가 방을 나가자 매미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매미는 더 지칠 뿐이었습니다.


그날 학교에서 서준이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4교시 자연시간에 매미에 대해서 배운 것입니다. 매미가 7년 정도를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여름에 땅으로 나와 몇일 못살고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밤에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아 매미가 낮인줄 알고 울어댄다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정도 모르고 서준이는 매미만 탓했던 것입니다.


점심시간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매미한테 한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서준이는 석달 전 교통사고로 열흘 동안 입원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 뛰어놀지 못해 얼마나 갑갑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매미는 고작 몇일을 살려고 무려 7년이나 땅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을지 서준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가 파한 뒤 서준이는 한숨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페트병 속의 매미가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툭 건드리자 짧은 울음과 함께 매미가 곤두박질했습니다. 그러다 구멍에 다리가 끼어 부러져 버렸습니다. “아차”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서준이는 매미를 집어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매미가 붙어있던 참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껍질을 깨고 나온 애벌레 껍데기가 참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장대로 매미를 쫓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애벌레였는데 서준에 눈에는 이제야 보였습니다.


“매미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서준이는 공중으로 매미를 날렸습니다. 땅으로 곤두박질 할 듯 위태롭던 매미는 이내 방향을 잡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서준이는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30.형부 월세 낼게요

학교와 직장 문제로 성남 형부 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처제 은경이가 형부인 민덕이에게 물었다.


ꡒ형부, 월세를 좀 내면 안 될까?ꡓ

ꡒ무슨 월세? 그게 무슨 소리야?"

ꡒ아니,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많이는 아니더라도….ꡓ

ꡒ됐어, 뭐가 미안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어."


형부인 민덕이는 월세를 내겠다는 은경이의 의견을 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은경이는 아내에게도 ‘월세 내면 안 되겠냐’고 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민덕이보다 한술 더 떠서 ꡒ너 정말 혼나고 싶냐?ꡓ며 심한 꾸중을 했던 터였다. 남남도 아니고 동생이 언니 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데 무슨 월세를 내냐고 호통을 쳤던 것이다. 처제 은경이의 ꡐ월세 발언ꡑ이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덕이는 처제 은경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ꡒ얹혀 산다ꡓ고 생각하고 있었고 게다가 민덕이네 형편이 그리 넉넉하질 않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형부 민덕이가 처제 은경이의 월세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2년 전, 지금의 아내와 연애 시절 민덕이는 서울 큰누나 집에서 생활했다. 비교적 널찍한 아파트였지만 누나 가족과 함께 사돈 처녀, 사돈 총각 등 시댁 식구들이 다 같이 살았기에 방이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당시 초등학교 3학년과 유치원생이었던 두 조카를 엄마 아빠 방으로 보내고 민덕이가 그 방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을 누나집 조카들 방에서 살았다. 너무나 미안했지만 당시엔 그  방법뿐이었다.


민덕이는 영등포 집에 애인을 데려다 주고 늦은 시간에 돈암동 누나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밤 10시 넘어 들어오는 날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누나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언제 오느냐, 밥은 먹었느냐고 묻곤 했다. 물론 민덕이가 밥을 안 먹은 날이 많았지만 그냥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그렇게 굶고 잠자리에 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너무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하다가 덜그럭 소리는 바람에 누나가 깼다. 눈 비비고 일어난 누나는 밥도 안 먹고 다니냐며 끓는 물을 내려놓고는 밥을 차려 주기도 했다. 시댁 식구와 아이들 때문에 온 종일 가사에 시달려 만성피로에 허우적대는 누나였는데 그런 누나가 야심한 시간에 차려 주는 밥이 제대로 넘어갈리 없었다. 민덕이는 배가 고프더라도 마음이 편한 편을 택해 죽을 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런 다음 민덕이는 이불 속에서 소곤거리며 영등포에 있는 애인(지금의 아내)과 통화를 하곤 했다. 애인 옆에는 동생 은경이가 누워 있었고 결국 민덕이가 돈암동 누나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은경이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굳이 전화 통화 내용뿐만 아니라 우애가 두터웠던 아내와 처제는 서로에게 숨기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남에 집에 얹혀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제 은경이는 그때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 당시 민덕이는 누나에게 월세를 내진 않았다. 다만 부모님 노후를 위해 민덕이 6남매가 한 달에 5만원씩 모으는 적금이 있었는데 큰누나가 통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민덕이는 누나에게 10만원을 건네주면서 나머지 5만원은 애들 과자 사주라고 하곤 했다.


누나는 뭘 이런 걸 주냐고 하면서도 고맙다고 받았다. 아이들한테 먹을 거 사주면서도 "이거 민덕이 삼촌이 사주는 거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또 그런가 하면 누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와이셔츠나 넥타이 등 민덕이에게 옷을 사다 줬다. 매형 옷 사는 김에 민덕이 것까지 샀다고 하면서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덕이는 알고 있었다. 누나가 민덕이한테 사줬던 옷들, 애들 과자 사주라고 한 달에 한번씩 줬던 5만원을 그렇게 해서 민덕이에게 돌려줬다는 것을…. 민덕이가 내미는 5만원을 안 받으면 오히려 민덕이가 더 미안해 할 것을 염려해 우선 고맙다고 받아 뒀다고 그런 방식으로 민덕에게 되돌려줬다는 것을.


2년이 지난 지금 처제 은경이도 과거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 다만 그때와는 주거 환경은 좀 달랐다. 돈암동 누나집은 대가족이 살아 방이 부족했고 성남 민덕이네 집은 방이 두 개나 남아도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세 식구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뿐더러 넓은 집에 민덕이와 아내 둘이 살려니 적적하기만 한데 오히려 처제 은경이가 있어 더 좋다고 민덕이는 생각을 했다.


월세 때문에 옥신각신 하던 어느 날 은경이는 언니의 지갑에 몰래 10만원을 넣었다. 그러나 민덕이와 아내는 곧장 처제 은경이에게 그 돈을 돌려줄 수 없었다. 민덕이가 누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섣불리 되돌려 줬다간 은경이가 오히려 서운해 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민덕이와 아내는 선물가게에 들렀다. 은경이가 월세 명목으로 준 10만원으로 여성용 화장품을 샀다. 그동안 은경이는 변변한 화장품도 없어 언니와 함께 주로 샘플용 화장품을 쓰고 있던 터였다. 민덕이는 화장품 갑 속에 이런 글귀를 적은 작은 엽서를 끼워 넣었다.

“은경 처제, 월세 내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늦게 들어오지마.”



31. 담벼락 시계에 얽힌 사연


영필이는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은행동 시장 쪽으로 가다가 주택가 밀집지역에서 특이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한 빌라의 바깥벽에 큼직한 시계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누가 그랬을까? 누군가가 장난으로 걸어놓은 것일까?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벽시계의 시간이 현재시간과 정확히 맞았다. 7시 10분. 그것은 살아 있는 시계였다.


좀더 가까이 가 살펴보니 시계의 테두리에는 여러 겹의 투명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웬만큼 비가 와서는 물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방수장치를 해 놓은 것이었다. 영필이는 이 시계 가 왜 이곳에 걸려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혹여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까 해서였다.


시계가 붙어 있는 곳 바로 옆에 마침 슈퍼마켓이 있었고 마침 그곳에 동네 아저씨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필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 저 시계 누가 붙여 놓은 거예요?

하고 묻자 아저씨들은 일제히 손가락으로 슈퍼마켓 안을 가리키며

“여기 사장님이요." 라고 대답했다.


영필이가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입구 공중전화기 앞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역시 벽시계였다. 현재 시간이 정확히 맞는 살아있는 벽시계. 아무래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그 안에는 세 개의 벽시계가 더 걸려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건전지가 소모돼 멈춰 있었고 두 개는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슈퍼마켓 주변에는 모두 다섯 개의 벽시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슈퍼마켓 아저씨는 안에서 동네 어른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취기가 올라 있었다. 영필이는 그 이유를 물었다.


"아저씨, 왜 이렇게 시계가 집 안팎에 많이 붙어있죠?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나요?"

"사연은 무슨… 지나가는 사람들 보라고 붙여놓은 거지. 허허."


요즘 세상에 시계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비록 시계는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영필이는 생각했다. 그러나 서민 주택이 밀집돼 있는 곳인 만큼 노인들이 자주 지나다니고 초등학생들도 이 앞으로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 시계를 걸어놓았던 것이다. 바늘이 큼직한 시계를 걸어놓은 이유도 바로 눈이 침침한 노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슈퍼마켓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동네 아저씨들이 영필에게 물었다.


“젊은이, 주변에 시계가 많은 까닭을 알아냈소?”


영필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아저씨들에게 대답했다.


“네, 진정으로 남들을 배려하시는 주인아저씨네요.”


그러자 한 아저씨가 영필이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다른 말씀은 안하시던가요?”


“네, 학생들하고 어르신들 시간 보는데 불편하지 않게 일부러 바늘 큰 시계 달아놨다는 말씀밖에 안하시던데요.”


“허허, 젊은 양반. 사실은 이 시계에 얽힌 사연이 따로 있다오.”


한 달 전 이 동네에 사는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친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모란 터미널을 가는 중에 이 슈퍼마켓 앞을 지나게 되었다. 친구는 몸이 무척 불편해 딸의 결혼식장에도 참석을 못하는 상황이었고 남편도 일찍 돌아가시고 없던 터라 절친한 친구인 이 아주머니가 어머니 자리에 앉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나왔을 텐데 그날은 한복을 입고 급하게 나오던 참에 휴대폰을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이 슈퍼마켓 아저씨에게 시간을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려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시계가 30분이나 늦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저씨가 알려준 시간만 믿고 여유 있게 결혼식장으로 향했던 아주머니는 식이 끝나고 기념 촬영할 때 식장에 도착하게 됐다. 부모님의 자리가 비어있는 친구 딸의 결혼식. 아주머니는 너무나 속이 상하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슈퍼마켓 주인아저씨는 그 다음날 가게 주변 이곳저곳에 큼직한 벽시계를 몇 개 걸어 놓은 것이었다.



32. 보고싶은 개

 

어느 봄날의 휴일. 훈철이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을 찾았다. 오후 다섯 시쯤 공원에서 내려오는데 오솔길 벤치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훈철이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사람들 옆에 가 보았는데 그곳에는 사람들과 함께 두어 마리의 개가 있었다. 훈철이는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끼리 모여 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바로 그때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개를 내려다보며 한마디했다.


ꡒ아이구, 이 개 어떡하냐?ꡓ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순간 훈철이는 그곳에 있는 개가 주인이 버리고 간 동물임을 알 수 있었다. 개를 데리고 공원을 찾은 동네 사람들이 그 개의 거처를 놓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훈철이가 관심 있게 그 개를 들여다보자 한 아저씨가 그 개를 데려다 키울 수 없느냐고 훈철이에게 물었다. 그러나빌라에 사는 훈철이는 개를 키울만한 여건이 되질 않았다.


버려진 개는 시베리아 지방에서 눈썰매를 끄는 개로 잘 알려진 ꡐ시베리안 허스키ꡑ라는 종으로 성견이 되면 몸집이 매우 크다고, 훈철이에게 알려 주었다. 또한 생후 2-3개월 된 순종 허스키는 가격이 최고 100만원을 넘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개를 처음 발견한 동네 아저씨는 발견 당시 2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이 근처를 서성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공원을 한바퀴 돌았는데 벤치가 있는 그 자리에 와보니 사료, 샴푸, 빗, 개 껌까지 각종 개 용품이 담겨져 있는 박스와 함께 지쳐 보이는 개가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훈철이는 그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서 개 주인이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공원에 개를 두고 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이 개가 몹쓸 병에 걸려 치료할 방법이 없어 이곳에 버리고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 개는 병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렸고, 콧물을 심하게 흘리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이것저것 먹이를 줘도 그 개는 먹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땅에 묻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주인이나 데려다 키울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훈철이는 공원관리사무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치된 개가 있음을 즉시 알렸다. 그러나 공원 관계자들은 그렇게 급한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두시면 사람들이 알아서 데려다 키울 거예요. 만약 내일까지 사람이 안 나타나면 동물보호소에 연락해서 데리고 가도록 할게요. 공원에서 종종 있는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훈철이는 관리사무소 아저씨의 말에 실망했다. 밤이 되면 날이 쌀쌀한데 오늘 중으로 새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몹시 걱정이 되었다.


바로 그때 그 개를 데려다 키우겠다는 한 4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머니는 그 개를 보면서 연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순간 훈철이는 그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하는 개를 보면 안타깝고 슬퍼해야 하는 일인데 웃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훈철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종류의 개가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주머니가 데려다가 다른 곳에 팔아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훈철이는 조심스럽게 아주머니를 떠보기로 했다.


“아주머니, 이 개 정말 데려다 키우실 거예요?”

“네, 지금 남편한테 연락했는데 곧 도착할 시간이 됐어요.”

“어디서 오시는데요?”

“경기도 광주에서요.”


광주에서 이곳 성남까지 오려면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데, 언제 와서 데려간다는 말인가? 훈철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내려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장사를 불러 팔아넘기는 것이 아닐까?


아주머니에 대한 의심이 떠나지 않던 훈철이는 개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남편이 아닌 개장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훈철이는 확신했다. 그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그것을 역력히 느꼈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 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고 아주머니와 훈철이 둘만 남았다. 훈철이는 개와 아주머니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 동안 아주머니는 두어 번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개장사일거라 훈철이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정도 지났을까. 아주머니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허름한 승용차를 타고 정말 나타났다. 버려진 개는 그렇게 구조되었다. 그러나 훈철이의 마음은 밝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에 대한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훈철이는 여러 번 그 공원에 올랐다. 혹시나 해서 그 개를 데리고 간 아주머니가 나타날까 싶어 주위를 살펴보곤 했지만 허사였다. 아주머니 대신 한 젊은 여자가 개가 버려진 바로 그곳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훈철이는 혹시 그 여자가 개를 두고 간 여자가 아닌가하고, 그렇다면 왜 개를 버렸는지 묻고 싶었지만 다 지난 일이라고 여기고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 동안 계절이 두 번이 바뀌어 가을이 됐다. 훈철이는 단풍을 구경하러 그 공원에 올라갔다가 뜻하지 않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지난 봄, 훈철이를 애타게 만들었던 그 개 시베리안 허스키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개를 데리고 있는 건 그때 그 아주머니와 남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개는 세 마리의 강아지를 달고 왔다.


그랬다. 남편 사이에서 자식이 없던 아주머니는 그 개를 자식으로 생각하고 데려다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다른 속셈의 웃음은 다름 아닌 자식을 얻게 된 기쁨의 웃음이었음을 훈철이는 알게 됐다.


또한 그 당시 누군가에게 두어 번 전화를 한 것은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이었다. 개를 데리고 경기도 광주에 도착하면 동물병원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고 사정이 급하니 퇴근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었다. 늦은 시각 개를 진찰한 결과 급성 장염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일주일만에 그 개는 완전히 낫게 됐다.


이 개 때문에 행복을 얻은 이 아주머니와 남편은 동물병원에서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전 주인에게 새끼라도 돌려주어야겠다는 게 아주머니의 생각이었다. 결국 새끼가 어느 정도 걷게 되었을 때 아주머니와 남편은 혹시 그 개의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해서 공원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33.두통이 맺어준 사랑


대학 시절 창수는 소위 ‘범생이’였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학실에 들러 두시간 정도 영어회화 연습을 한 후 자취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러한 내 생활은 늘 반복됐다. 쉬운 말로 창수는 ‘시계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돼던 어느 봄날, 그날도 창수는 어김없이 어학실에서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귀에 헤드셋을 쓰고 작은 목소리로 영어테이프를 따라 발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창한 목소리로 영어회화를 구사하는 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창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영문학과 야간학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었다. 창수는 그 여학생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같은 학과이다 보니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어학실에 오갈 때마다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그런 사이였다. 여하튼 창수는 그녀의 큰 목소리 때문에 회화 공부에 방해가 되긴 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얼굴도 예뻤을 뿐 아니라 평소 차분한 그녀의 행동에 창수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수는 다음날도 어학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머리가 약간 아팠다. 아무래도 실내에 너무 오래 있어 그런 것 같다고 창수는 생각했다. 창수는 머리를 식힐 겸해서 어학실에서 나와 도서관 앞 시계탑 광장에 앉았다. 많은 커플들이 나란히 앉아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모습이 보였다. 따스함 봄볕에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창수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자신에게는 언제쯤 저렇게 예쁜 사랑이 찾아올까 생각하며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창수는 학교 뒤에 있는 우암산에 올랐다. 기분전환이나 할까 해서였다. 울긋불긋 피어있는 진달래, 개나리가 창수의 마음을 더욱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정겨운 풍경이 있는 이곳을 혼자 올라가야 하는 신세가 한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50미터 전방에서 바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어학실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창수는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하나 그냥 지나쳐야하나 하고 많이 고민했다. 숫기가 없던 창수에게 있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냈다. 그냥 말 친구라도 해볼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영문과 3학년 문창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왠일이세요?”

“안녕하세요. 머리가 아파서 바람 쐬러 잠깐 올라왔어요.”

“아, 그러세요. 저도 두통이 있어서 바람 쐬러 왔는데.”

“아, 정말요? 아마 헤드셋을 오래 쓰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두통’이라는 공통 주제로 시작한 창수와 그녀와의 대화는 곧바로 다른 주제로 이어졌다. 그들은 그날 엉덩이가 저리도록 세 시간동안이나 그곳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창수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빠져들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곱고 반듯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부터 창수와 그녀는 같이 다녔다. 떡볶이 먹으러 갈 때나 수업 들어갈 때 늘 붙어 다녔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분명 커플이었지만 누가 먼저 사귀자는 말은 못했다. 그러나 창수는 이런 관계까지 발전한 것만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사귀어보자고 말은 하고 싶었지만 숫기 없는 창수로써는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 한달. 그녀의 생일날이었다. 창수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녀를 불러 향긋한 아카시아 냄새가 은은한 법대 앞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는 평소 갈고 닦은 기타와 노래솜씨를 과감하게 뽐냈다. 곡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내게 너무 예쁜 그녀’였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선물도 건네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책’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게 너무 이쁜 그녀,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건가요?”


책을 건네주고 나서 창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그 메모를 확인하는 게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조용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한 창수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날 밤 창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 동안의 정황으로 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친해질 거라고 믿었지만 혹시 부담을 느껴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창수는 내심 전자의 경우만 생각했다.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그녀는 어학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올라오지 않았다. 망설이다 못한 창수는 그녀에게 수 차례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또 많이 고민한 끝에 휴대전화도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창수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자신에게 부담을 느껴 그녀가 학교도 나오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창수는 그녀의 생일날 그렇게 고백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시간을 더 두고 자연스럽게 더 친해졌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잠시나마 창수에게 행복감을 안겨줬던 그녀는 완전히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녀가 사라진지 3일째 되던 날 어학실에서 창수는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다. 창수 자리에 그녀가 놓고 간 선물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책’ 


“그리 예쁘진 않지만, 언제나 창수 씨 곁에 있을게요.”


생일 다음날 새벽 그녀는 어머니가 다쳤다는 통보를 받고 학교에는 미처 알리지도 못한 채 고향인 강화도 근처의 작은 섬으로 급히 향했다. 허둥지둥 서두르는 과정에서 휴대폰도 길거리에 잃어버렸다. 고향에 도착한 그녀는, 어머니가 그물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다지 크지 않은 부상을 입은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 강화도 부근 서해에서 북한 선박이 남방한계선을 넘어오는 사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어떤 민간 여객선도 육지를 오갈 수 없었다.




34. 아버지 비료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꽤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어젯밤 TV에서 한 기상캐스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ꡒ오늘밤부터 내일까지 꽤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ꡓ 그러면서 그 기상캐스터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ꡒ비가 와서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비가 그치고 나면 완연한 가을이 찾아오고 예년보다 더 빛깔 좋은 단풍이 들것입니다ꡓ 라고 말이지요.


그 순간 시골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모든 논의 벼가 다 엎쳤고 그 때문에 식사도 못하고 상심하고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비 그친 후 단풍이 곱게 물들 거라는 기상 캐스터의 멘트가 제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엊그제 막내 태덕이한테 ꡒ엎친 벼 때문에 아버지 식사도 못 하신다ꡓ는 전화 받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ꡒ아버지 식사도 못하신 다면서유. 벼 다 엎쳐서 어떻게 한 대유. 그거 다 언제 일으켜 세운대유?ꡓ

ꡒ야, 그거 너희들 6남매(사위, 며느리) 다 와서 보름동안 일해도 다 못 세우겠더라.ꡓ

ꡒ그러게요, 어쩐대유?ꡓ ꡒ그렇다고 그냥 놔 둘 수도 없구.ꡓ

ꡒ야, 속상해서 논에 가기도 싫다. 그런데 어쩌냐, 마음을 비워야지. 휴~.ꡓ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유독 우리 논의 벼만 왜 그렇게 엎어졌는지. 모두 아버지의 부지런함 때문이라는 걸 말이죠. 3월 모내기하기 전 너무나 많은 두엄을 내셨고, 남들보다 더 많이 비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 벼가 다른 논의 벼보다 낟알이 굵고, 무겁기 때문에 약한 비, 바람에도 쉽게 쓰러졌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늘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한 정성을 쏟는 일이 결국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시면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이지요. 단지 큰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아버지, 부디 내년부터는 너무 많은 거름, 비료 주지 마세요. 수확량이 좀 줄어들더라도 꼭 그렇게 하십시오. 더 이상 가르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구들 ꡐ양식ꡑ만 하면 되잖아요. 더군다나 ꡐ내일 모레ꡑ면 70이시고 지금도 밤이면 삭신이 쑤신다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해마다 두엄, 모내기, 농약, 추수 등 일손이 한참 달릴 때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 삼아, 주말에 차 많이 막힌다는 핑계로 자주 내려가지 못한 점 말이지요. ꡐ꼬부랑 할머니ꡑ가 다 되신 어머니께서 무더운 여름날 농약 줄을 붙잡고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어제, 오늘 내린 비를 보고 나서야 간절한 아버지 생각에 몇 줄 올립니다. 이번에 내린 비로 엎어진 벼에 싹이 트겠죠? 그렇게 되면 벼의 상품 가치는 최악이 되는 것이고요. 한 알 한 알 싹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망가진 곡식이 이토록 아버지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네요.


추수가 끝난 늦가을.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그 너른 빈 논을 빠짐없이 돌아다니시며 한 톨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볏 이삭을 주우실 것입니다. 곡식을 향한 아버지, 어머니 마음이 이러할진대 엎어진 논에서 싹을 틔우는 벼를 바라보시는 마음은 어떠하실는지요.


아버지, 내년에는 부디 거름, 비료 너무 많이 주시지 마세요.




35. 휴, 이 전자레인지를 어쩌죠

어제 저녁 때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때라 언제 내려올지 궁금해서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ꡒ내일 저녁때 올라갈게요.ꡓ


그러자 어머니께선 대뜸 ꡒ야, 거기 눈 다 녹았냐? 질(길) 안 미끄러우냐?ꡓ라고 물으시더군요.


ꡒ여긴 괜찮아요. 서산엔 눈 많이 왔죠? 내일 눈 또 온다던데 서해안은….ꡓ


ꡒ야, 스산(서산)은 눈 하나도 안 녹았어야. 한길(큰길)도 눈이 그대로여! 그런데 정말 거기 눈 다 녹았냐?ꡓ


ꡒ아이구 여긴 괜찮아요. 사람들이 골목에 소금도 뿌리고 연탄재도 뿌려서 하나도 안 미끄러워요ꡓ라고 답하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자기 집 앞의 눈을 쓸거나 약간의 모래를 뿌리긴 했어도 소금과 연탄재를 뿌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연탄을 쓰는 가정도 없고 소금은 염화칼슘을 뿌리는 큰 도로변의 공무원들을 가리켜 한 말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염화칼슘이라는 말은 생소한 것이기에.


사실 성남 남한산 중턱에 위치한 저희 집은 눈만 오면 아슬아슬합니다. 어제, 오늘 설 휴가 중인 저는 아내를 강남까지 출근시켜 주면서 빙판인 골목길을 드나들 때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1단 기어 넣고 핸드브레이크를 잡으며 천천히 진행해도 죽죽 미끄러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등골이 오싹하곤 했습니다.


전에 딱 한번 성남 저희 집을 오셨던 어머니께서는 비탈진 골목사정을 기억하시고는 걱정이 돼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웬만하면 차 놓고 버스 타고 내려오라고 말입니다.


어머니의 걱정은 단지 기우는 아니었습니다. 눈이 많이 왔던 엊그제 경기도 가평 시댁에 다녀오던 매형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났기 때문입니다. 속도를 낸 것도 아닌데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비탈길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매형과 조카는 멀쩡한데 작은누나는 뒷목이 약간 아파 병원에 입원했고 차는 심하게 파손됐다고 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어머니께서는 큰형과 막내 동생 그리고 제게 전화를 하셔 땅은 다 녹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오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그저 몸만 내려오라고 말입니다. 시골 부모님들 마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니에게 ꡒ뭐 가지고 갈게 있는데. 령희(아내)가 뭐 하나 준비…ꡓ까지만 말하고 끝을 흐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ꡒ왜 말길을 못 알아 듣냐?, 그냥 몸만 오랑께. 느그들 때문에 속터져 죽것다ꡓ며 근심하셨습니다.


퇴근한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의논했습니다. 물론 저는 차를 가지고 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습니다. 올라올 때 처갓집에 들러야하고 버스 전용차로도 없는 서해안 고속도로인데 오랜 시간 버스에 갇혀있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ꡒ아무 것도 필요 없이 몸만 오라ꡓ는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사실 아내는 어머니 설 선물로 전자레인지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그 전자레인지는 단순한 선물의 개념보다는 애틋한 사연이 담겨져 있기에 두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년 전부터 시골 아버지께서는 1.5ℓ짜리 우유를 배달해 드시고 계십니다. 평소 우유는 입에도 안 대시던 아버지께서 우유를 드신 후 밥맛이 좋아지고 든든하시다며 이틀에 한번씩 배달해 드십니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아내는 양은냄비에 가스 불로 우유를 데워 아버지께 드리는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냄비를 씻지도 않으시고 그냥 덮어두었다 때 되면 우유를 또 붓고 데워 드시는 어머니에게 작은며느리가 전자레인지를 꼭 선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전자레인지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어머니께 가르쳐드리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그 전자레인지를 차에 싣고 가면 괜히 아내만 야단 맞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 가지고 오지 말라고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내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는 꼴이 됐으니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머니께는 ꡐ그깟ꡑ 전자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마음과 정성이 담긴 물건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입니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ꡒ됐어, 어머니 뭐라 하시면 무조건 내가 우겨서 차 가지고 왔다고 그래ꡓ라며 달랬습니다.


ꡒ그래도 전자레인지 보시면 나한테 뭐라고 하실 텐데…ꡓ라며 아내의 걱정은 계속됩니다.


그냥 제가 사왔다고 하면 마음 편할 텐데 이미 집사람 얘기를 해버려서 돌이킬 수가 없게 됐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번 설 연휴동안에 서해안쪽에 큰 눈이 온다던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36. 이십년전 아내의 일기장

<오늘도 어제처럼 피곤하셔서 (아빠가)쉬셨다. 오늘은 저녁밥을 일찍 먹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조금 보고 나서 7시 30분이 되어 엄마 도시락을 같다 주었다. 엄마 밥을 같다주러 엄마 회사에 가니까 엄마가 나와서 빵을 같다 주셨다. 빵이 참 맛있었다. 엄마는 엄마가 야근하시면 밥을 같다 준다고 배가 고프지 않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레서 엄마가 없으시면 언니가 엄마다. 아빠는 집에서 놀으시다가 볼일을 보시러 어디로 가셨다>


이 일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3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제 아내가 쓴 것입니다. 아홉 살 때이지요.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문장구성도 엉성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일기에서는 엄마(장모님)가 도시락을 챙겨주시는 게 아니라 어린 딸(아내)이 공장에 계신 엄마에게 도시락을 갖다드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도시락을 갖다 준 것으로 보아 아마 엄마께서 야근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엄마에게 드릴 도시락을 들고 공장을 찾아갔는데 오히려 엄마가 아이(아내)에게 '빵'을 주신 겁니다. 야근할 때는 공장에서 저녁이 나왔던 모양입니다. 저는 바로 '빵'이란 단어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지금도 신길동 처갓집에 가면 수북히 쌓여 있는 '빵' 때문입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장모님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재봉일을 하고 계시지요. 간식으로 오전에 빵과 우유가 나온다고 합니다. 20년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먹을 것이 많아서인지 500원짜리 빵은 잘 안 먹는다고 하더군요.


이렇다보니 공장 동료들에게 지급된 빵도 웬만하면 절약정신이 투철한 '손아주머니'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집으로 가져간 빵은 진순이(강아지 이름)이가 즐겨 먹지만요.


처갓집에서 자고 출근하는 날이면 장모님은 꼭 빵을 챙겨주십니다.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출출할 때 빵이라도 먹으라며 몇 개씩 내어주곤 하십니다. 장모님의 사랑을 '빵'에 담아 사위에게 건네시는 마음은 아마도 20년 전 딸들에게 하셨던 마음과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내의 초등학교 일기장에서는 '엄마에게 도시락을 갖다 줬다. 빵을 주셨다' 등의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아내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지만 오래된 일기장 속에서 그 당시 '엄마와 딸의 끈끈한 모정'을 직접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워집니다.


일기장에 '엄마 밥'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엄마 밥'이라는 도시락을 손에 들고 엄마의 직장을 찾아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아이구, 우리 애기 왔어?"하며 어린 딸에게 빵을 내주시는 엄마의 모습을 말이지요. 어쩌면 엄마는 매우 시장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시며 아껴뒀던 '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추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좀 애처롭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리 넉넉지 않았던 아내의 어린 시절이 꼬깃꼬깃한 일기장 속에서 묻어 나오기 때문이지요. 지금이라도 좀 넉넉히 생활하시면 '옛 추억쯤'으로 돌리며 장모님과 지난 일들을 재밌게 얘기할 수 있으련만….


오늘은 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어떻게 일기를 쓰는지 모르겠군요. 저희 어렸을 때의 일기내용은 '몇 시에 일어났다. 밥 먹었다. 학교 갔다' 뭐 이 정도 내용이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비하면 아내의 일기는 '만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지난날의 일기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일기 쓰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옛 일기장을 찾아보십시오. 돌아가신 부모님 얘기도 적혀 있을 테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건들이 기록돼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아내의 일기'처럼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면 말입니다.


혹자는 "다 지난 일기장 들춰서 뭐하나?"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내 또는 남편의 옛 일기장 속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서 가족간, 부부간의 화목을 더욱 더 다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의 경우를 보십시오. 이 짤막한 아내의 일기를 읽고 나서 아내와 장모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지 않았습니까? 아내의 일기를 계기로 아내에게는 '사랑'을, 장모님께는 '존경의 마음'을 더욱 더 짙게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37. 퉁퉁 불은 자장면 감동의 사연


서울 강서구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하는 박충식 씨(49·가명)는 왼쪽 팔이 조금 짧은 지체장애인이다. 10여 년 전 배달 일을 하다 사고로 다쳤다. 박씨는 불편한 왼쪽팔을 핸들에 의지한 채 열심히 배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 지영(10·가명)이는 이런 모습의 아버지가 창피했다고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남들과 조금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 창피한 마음에 혼자 다니는 일도 많아졌다.


가을 운동회가 있던 올 9월의 어느 날, 친구들은 가족들과 모여 즐겁게 식사를 했지만 생계가 급한 탓에 지영이 부모는 운동회에 오지 못했다. 그때 정문 쪽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 사람은 다른 아닌 아빠 박씨였다. 모든 시선이 아빠 박씨에게 집중된 채 오토바이는 지영이 앞에 멈췄다.


"우리 공주님, 왜 아빠한테 오늘 운동회라고 알리지 않았어? 급하게 준비해 오느라고 오늘도 자장면이지 뭐니?"


순간 아이들은 양쪽 손이 다른 김씨를 이상하게 쳐다봤고 이러한 시선에 눌려 지영이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모습에 아빠 박씨도 무척 당황한 터였다.


"허허, 이런, 내가 나이를 먹다보니 배달을 잘못 왔구먼. 허허."


이 말과 함께 김씨는 힘없이 돌아섰다. 그때 교장선생님이 김씨를 불러 세웠다.


"지영이 아빠 맞죠? 아이구, 우리 학교의 말없는 천사분이에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모두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김씨를 쳐다보았다.


"얘들아! 이분이 바로 집안이 어려워서 방학기간에 굶는 학생들을 위해 매년 무료로 자장면을 제공해주시는 분이란다.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철없는 아이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싱거운 박수를 쳤다. 멋쩍어하던 아빠 박씨가 아이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허허, 보시다시피 제 손이 불편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좀 불은 거라도 맛있게 먹어 줬으면 고맙겠어요."


그 순간 학부형과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제야 지영이는 울면서 아빠 품에 안길 수 있었다.



38. 서점에서의 배려


태수는 대전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태수는 교수님이 내 준 리포트를 쓰기 위해 대전역 앞에 있는 큰 서점에 갔습니다. 관광학 원론이라는 과목이었는데 참고서를 들춰 보던 태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교수님이 알려 주신 제목을 살피고 나서 옮겨 적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시간은 옮겨 적어야겠는 걸.”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태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자료를 열심히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털썩 앉아서 옮겨 적으면 좀 편했겠지만 그날따라 흰 바지를 입고 와서 그렇게 할 수 도 없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온몸이 뻐근해지면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됐고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그 순간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참고서에서 잠시 눈을 떼고 쉬었다 다시 옮겨 적으려는 순간 볼펜이 손에서 떨어졌고 이를 주우려다가 몸이 흔들리는 바람에 땀방울이 책장 위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수십방울씩이나….


"어떡하지?”


당황한 태수는 누가 볼세라 얼른 소매로 책장의 땀방울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땀방울이 흘러 책장은 심하게 얼룩졌고 소매 단추에 걸려 작은 구멍까지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못 봤을 거야. 얼른 나가야겠다….”


태수는 참고서를 덥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서점 여직원이었습니다. 태수는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주머니 속엔 백원짜리 동전 몇 개와 500원짜리 승차권 석장이 전부였습니다. 만오천원이나 하는 이 책을 점원이 사야 한다고 말하면 어쩌나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여기 앉아서 하세요."


그러면서 여점원은 파란색 간이 의자를 태수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못 들고 있던 태수는 여직원의 뜻밖에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짜증이 아닌 친절한 여직원의 배려에 태수는 우쭐우쭐 대답도 못하고 파란 의자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없이 참고서 내용을옮겨 적었습니다.


그 날 저녁 태수는 서점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수는 이 고마운 일을 낱낱이 적어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 쇼에 보냈습니다. 며칠 뒤 태수는 라디오에서 이소라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대전시 서구 도마동에서 김태수씨가 사연을 주셨는데요,아주 따뜻한 사연입니다. 리포트 쓰기 위해 서점에 갔다가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좋은 사연 보내 주신 김태수씨께 도서상품권 10매 보내드리겠습니다.”


일주일 후 태수 앞으로 도서상품권이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태수는 도서상품권 다섯장을 편지 봉투에 챙겨 넣고 대전역 앞 서점으로 갔습니다. 그 여점원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어, 아…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시겠어요?”


태수는 그 여직원을 대하기가 쑥스러워 말까지 더듬으며 간신히 말을 붙였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 날 리포트는 잘 쓰셨나요? 양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네, 덕분에…. 그 날 정말 고마웠습니다.”

“뭘요.”


여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태수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태수는 그 날 책장에 떨어지는 땀방울을 이 여직원이 보았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여직원이 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서서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찜찜한 것보다 차라리 솔직히 얘기하는 게 낫다고 태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혹시 그 날 책장에 땀 흘린 거 보셨나요? 소매로 닦다가 구멍까지 났는데….”


여직원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책 몇 권을 들고 비어 있는 책꽂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때까지 태수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책을 꽂고 돌아온 여직원은 웃으며 태수에게 말을 했습니다.


“왜요? 그 책 사시려고요?”


그때 태수는 가방 속에서 도서상품권이 들어있는 편지 봉투를 꺼내 여직원에게 건넸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이거 선물로 드리려고요.”

“아니예요, 태수씨 마음 다 아니까 안 그러셔도 돼요.”

“어떻게 제 이름을?”

“사실은 어제 밤 라디오에서 태수씨 사연 들었어요. 그거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 후 태수는 서점에 갈 때마다 이 여직원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여직원은 태수와 동갑내기였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서점에 취직을 한 것입니다. 책 정리하면서 틈틈이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장에 땀방울이 떨어지고 찢어지기까지 했는데 책 값을 물어내라는 말 대신 간이 의자까지 갖다주며 친절을 베풀었던 이유를 태수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39. 지하철에서 겪은 장애인 아주머니 돕는 학생


출·퇴근 길,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종종 마주치는 50대로 보이는 한 시각장애인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만 4년을 성남에서 살고 있고 같은 시간대 늘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오다가다 아는 얼굴을 마주치기 일쑤고 그 시각장애인 아주머니도 그 중 한 분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잠실역에서 교대방면 2호선으로 갈아타시는 정도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그 아주머니께서 어느 여학생의 손을 잡고선 남한산성입구역 의자에 앉아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동차가 들어오자 그 여학생은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열차에 탔습니다. 열차 안에서도 아주머니와 학생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복정역에서 자리가 나자 학생은 시각장애인 아주머니를 안내해 자리에 앉혀 드렸고 그들 앞에 서 있던 저는 우연찮게 대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 여학생이 앞이 안 보이는 아주머니를 도와주려다가 앞 열차를 놓쳤고, 아주머니는 그것에 대해 미안해 하고 계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성남의 한 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이 학생만한 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딸도 시력이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습니다.


또 아주머니는 무슨 일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구로까지 가신다는 말씀에서 디지털단지에서 일하시는 걸로 미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앞이 안 보이니 휴대전화를 주로 사용해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또 그런가 하면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던 아찔한 기억도 스스럼없이 꺼내셨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몹시 간절하셨던 듯 일상의 작은 것까지 학생에게 얘기해주셨습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학생은 내내 진지한 표정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의 눈을 쳐다보며 때로는 웃음을 지었고 아주머니의 말에 공감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정한 모녀 사이 같았습니다. 이들의 대화에 저뿐만 아니라 주변 승객들도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잠실역에 다다랐을 쯤 아주머니와 학생은 각자의 소회를 털어놓았습니다. 학생은 혼자서 지하철 타면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오늘은 아주머니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또 아주머니는 늘 외롭게 지하철을 탔는데 학생을 만나 훈훈한 시간을 보냈고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 전했습니다.


잠실역에서 아주머니도, 학생도, 저도 내렸습니다. 또 다시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조심하시라며 앞을 안내하는 학생의 모습을 뒤로 하고 저는 2호선 시청 방면으로 향했습니다. 성수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탔는데 마침 그 학생이 제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얼굴도 매우 예뻤지만 시각장애 아주머니를 배려하고 끝까지 챙기는 그 고운 마음이 투시경을 통해 보이듯 비쳐졌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고 난 후 얼른 제 갈 길을 가는 게 일반적인데 두 손을 꼭 잡고 끝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 여학생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이들의 대화를 듣고 모습을 지켜봤던 주변 승객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함이랄까.


그리고 다시 한번 장애인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내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시각, 지체 장애인들을 향한 은연중의 편견. 이들의 일차적 어려움은 먹고 살아가는 문제겠지만 그 이면에는 '외로운 삶'에 대한 고충이 있습니다. 흔히 장애인들을 처음 볼 때 '안됐다'라고는 생각하지만 '외롭겠다'고까지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먼저 다가가 손잡아 주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지요.


또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아주머니의 경우처럼 장애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가정과 일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도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이 훈훈한 일을 겪기 전까지 이 아주머니가 가정과 일을 갖고 계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안 슬픈 음악과 힘겨운 삶을 사는 모습만 우선적으로 떠올렸던 저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해 준 그 여학생,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이 시각장애우 아주머니를 지하철에서 만나면 먼저 다가가 "아주머니"하고 손을 맞잡고 오늘처럼 다정하게 아주머니를 도와줄 것이란 믿음이 가네요. 그렇지요? 그 학생처럼 선행을 베푸는 아름다운 모습을 또 보고 싶습니다. 아니, 매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0. 오백원짜리 샌드위치에 담긴 마음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덕원여고, 화곡여상 길목에 곳에 분식집을 하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의 별명은 ‘모닝샌드 아주머니ꡑ였다. 샌드위치, 우유, 주스, 떡볶이, 라면,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데 그 중에서 샌드위치가 가장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고구마와 감자를 주 원료로 만드는 샌드위치 가격은 오백원인데 아주머니는 샌드위치를 사는 학생들에게 요구르트를 덤으로 주곤 했다. 어떤 때는 샌드위치 한 개를 사도 요구르트를 두개 끼워주는 경우도 있었다. 샌드위치를 그냥 먹으면 목이 막히기 때문에 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주방일이 바쁠 땐 안에서 보이지도 않는 바깥 가판대에 샌드위치와 돈 통을 놓아 두었다. 그러면 학생들은 알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돈통에 돈을 넣고 가곤 했다. 아주머니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고자 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주머니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데 동전이 부족한 학생이 있으면 서슴없이 샌드위치를 내어 줬다. 등교길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들어오는 학생을 보면 아주머니는 마음이 아팠다. 조심스럽게 불러 ꡒ밥은 먹고 오니?ꡓ라고 물어 보기도 하지만 아주머니는 늘 조심스러웠다. 행여 그 학생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떡볶이를 팔고 남은 게 있으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가는 학생들 먹으라며 컵에 담아 밖에 내놓곤 했다. ꡐ끝물ꡑ로써 떨이로 팔수도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 아주머니의 천성은 그렇게 착했다.


이런 아주머니의 모습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착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한 여고생이 있었다. 주인공은 덕원여고 2학년에 재학중인 한 학생이었다.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 친구 네 명과 귀가길에 그 앞을 지나던 이 학생은 며칠 전 못 드린 거스름돈을 드리기 위해 모닝샌드 아주머니 가게에 들렀다. 당시 샌드위치 두개를 집으며 만원을 건넸는데 아주머니가 잔돈이 없다며 그냥 먹으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 학생의 등을 떠밀면서 그냥 가라고 했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이 학생은 샌드위치 값을 드리려고 왔는데 가게문은 잠겨 있었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돈 통은 밖에 놓여 있었다.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옛 말이 떠올랐던 것일까? 친구들 사이에서 샌드위치를 그냥 가져가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 학생은 극구 반대했다. 얼마나 착한 아주머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 학생은 말렸다. 그러나 결국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 학생은 눈물을 머금고 친구들과 행동을 같이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걸어가던 학생과 친구들은 멀리서 지친 표정으로 장을 봐 오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옆길로 막 뛰었다. 한참을 뛰고 난 친구들은 아주머니의 우울한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했다.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틀 후 월요일날 아주머니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이 학생과 친구들은 동네 꼬마 다섯명을 시켜 아이들이 각자 먹을 샌드위치 값 이천오백원과 엊그제 몰래 먹은 값 이천오백원을 합쳐 오천원을 쥐어 주며 한 개씩 사먹으라고 하고 거스름돈은 받지 말고 그냥 나오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이렇게 해서 돈은 갚았지만 죄송한 마음을 전해 드리진 못했다. 이 학생과 친구들은 고민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아주머니께 사과하는 뜻으로 자신들이 한 행동을 사연으로 적어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보냈고 곧장 아주머니를 찾아가 사과하려던 참이었다.


아름다운 만남이 있던 그날 가게 안에서 그 학생과 친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ꡒ아주머니,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ꡓ

ꡒ얘들아, 내가 미안하구나. 그날 돈 통을 밖에 두지 않는 건데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어.ꡓ


오히려 아주머니는 자신의 행동을 몹시 후회했다. 샌드위치만 밖에 내놓고 시장에 갔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돈 통까지 밖에 두어 학생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돈 통이 밖에 없었다면 배고픈 학생들은 마음껏 샌드위치를 먹었을 테고 아주머니도 마음 편하게 장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주방 일이 바쁠 때 그랬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돈 통을 밖에 두고 시장에 간 건 분명 본인 잘못이라고 모닝샌드 아주머니는 거듭 말을 했다.


아주머니는 학생들이 마치 자신의 아들 딸 같다는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아주머니에게는 직장 생활하는 딸과 대학생, 중학생인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와서 ꡐ아주머니, 라면 주세요, 떡볶이 주세요ꡑ라고 할 때는 꼭 내 아주머니의 자식들이 엄마한테 밥 달라는 소리처럼 들린다며 아주머니는 울먹였다.


아주머니는 두해 전만 해도 남편이 6천만원대의 연봉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ꡐ사모님ꡑ 생활을 했지만 구조조정 탓에 지금은 아들 대학 등록금도 마련하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과거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을 그리던 아주머니는 "라면 주세요"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지난날 행복했던 가정을 지그시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